현대사회는 속도에 뒤처진 기업을 용서하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좀더 빠르게 채워주기 위한 스피드와 변화가 필수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류 패러다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터가 있다. 느리지만 슬기롭고, 개인 성과보다는 집단의 협력을 더 중요한 일터 가치로 삼는 기업이다. 바로 한국콜마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90년 설립한 한국콜마는 국내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제조’(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업체 가운데 최초로 ‘제조업자생산개발’(OD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을 시작한 업체다. 고객사로부터 제품을 의뢰받으면 연구개발부터 생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도맡아 진행하는 위탁생산업체다. 현재는 아모레퍼시픽, 엘지(LG)생활건강, 미샤, 더페이스샵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시중 제품의 절반 이상이 한국콜마가 만든 것이다.
성장도 문제 해결도 스스로, 유기농 일터
한국콜마 서울사무소 8층에 위치한 윤동한 회장 사무실에선 20년은 족히 돼 보이는 낡은 현판 하나가 눈에 띈다. ‘우보천리(牛步千里)’란 글귀가 쓰여 있다. ‘느리지만 우직한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갈 수 있다’는 사자성어는 한국콜마가 지향하는 일터와 맞닿아 있다. 좋은 교육을 받고, 능력이 출중한 A급 인재보다 당장은 부족하더라도 뿌리(자질)와 줄기(열정)가 튼튼한 재목을 발굴해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협력하는 일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느리지만 함께 협력하는 일터 조성을 한국콜마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직원 스스로 자기주도학습과 계발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콜마는 설립 초기부터 ‘콜마독서학교’(Kolmar Book School)를 운영하고 있다. 사내 도서관은 물론, 책 하나만큼은 직원들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한국사 등 인문학 강좌를 수시로 개설해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콜마는 이를 두고 화학비료와 같은 외부의 인위적인 도움 없이 직원 스스로 학습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유기농경영’이라 부른다.
행복일터가 곧 삶터, 가족 지원 제도 정착
둘째, 일터와 삶터의 경계를 허물고, 지속가능한 일터를 위해 다양한 복지제도를 시행 중이다. 직원들의 자질과 열정이 일터에서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일터는 물론이고 삶터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출산지원금이다. 지난해까지 첫째 자녀 출산 시 50만원, 둘째 자녀 출산 시 100만원, 셋째 아이의 경우 500만원을 지원했지만 올해부턴 셋째 자녀 출산 시 1000만원으로 지원금을 두 배로 늘렸다. 지난해까지 출산축하금을 받은 한국콜마 임직원은 329명으로 금액은 약 3억원에 달한다. 설립 초기 소액의 출산장려금으로 시작해 지금은 국가에 기여하는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축하금이자 포상금이 된 셈이다. 올해 3월 셋째를 출산하고 첫 수혜자로 선정된 석오생명과학연구소 김병수 책임연구원은 “아이가 하나 더 생긴 것도 기쁜 일인데 회사에서 큰 축하금까지 받고 보니 정말 국가에 큰 기여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출산 장려 문화가 더욱 확산돼 저출산 문제 해결에 많은 동료가 동참할 수 있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밖에도 가족공동체 문화를 형성해 사는 직원에겐 별도의 ‘효도수당’이 지급된다. 친부모, 배우자 부모를 가리지 않고 월 20여만원의 용돈을 회사에서 지급한다. 또한 미취학 직원 자녀에게는 태권도, 피아노 학원과 같은 학원비를, 자녀가 중·고교 입학 시엔 교복비를 실비 지급한다. 이는 정규직 직원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직원 자녀에게도 똑같이 지급하고 있다.
한국콜마는 직원들이 자질과 열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7일 한국콜마 직원 8명이 차세대 지역전문가를 꿈꾸며 중국으로 떠났다.
함께 협력하며, 미래를 꿈꾸는 일터
셋째, 업계 최고의 지역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콜마는 ‘제1기 차세대 지역전문가'를 선발해 중국으로 파견했다. 차세대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은 글로벌 역량을 지닌 핵심인력을 해외로 파견해 글로벌 인재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화장품부문, 제약부문, 기술연구원, 경영지원본부 등 전 부문에 걸쳐 대리급 인력 8명을 선발했다. 향후엔 미국과 동남아시아 등 새로운 시장에도 차세대 지역전문가를 파견해 주재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차세대 지역전문가로 선발된 최형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각종 자료와 업무 서류에서만 보아왔던 중국 시장을 한달간 직접 체험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전하며 “중국인의 관념과 의식 형태, 생활과 문화, 역사를 고찰해 향후 제품 개발의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외에도 신입사원들이 좀더 빨리 조직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멘토-멘티 제도를 10여년째 운영하고 있다. 대리급 사원 한명과 신입사원 한명이 매월 1회 식사 또는 모임을 통해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얘기하고 고민을 나누고 있다. 홍보팀 김지희 팀장은 “멘토-멘티 제도 도입 이후 신입사원 퇴사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멘토와 멘티의 개성과 특장점을 잘 살펴 상호 발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한국콜마는 과거를 배워 현재를 세우고 미래를 꿈꾸는 곳이다. 인문학을 통해 사람의 중요성과 상호 존중을 배우고, 이는 자기주도학습과 성장 그리고 협력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최근 한국콜마가 운영하기 시작한 차세대 지역전문가 제도는 이렇게 갈고닦은 직원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줬다. 윤 회장은 “기업과 직원 모두 혼자 빠르게 가는 것보다 느리지만 함께 가되 뒷걸음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원 스스로 학습하되 상호 협력하는 일터 조성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서재교 CSR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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