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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무기력이 제일 큰 문제”…한진샤먼호 선원들의 육성

등록 2016-10-30 15:00수정 2016-10-30 15:06

한진해운 화물선 최초로 승선해 선원 취재
27일 부산 앞바다에 정박 중인 ‘한진샤먼호’의 한 선원이 뭍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로 대화 중이다. 고나무 기자
27일 부산 앞바다에 정박 중인 ‘한진샤먼호’의 한 선원이 뭍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로 대화 중이다. 고나무 기자

전 경영진은 사라졌어도 직원들은 남아 화물선을 지키고 있다.

한진해운이 지난 8월31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경영구조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 경영진은 물러갔고 회사는 핵심자산을 매물로 내놨다. 그러나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 등 당시 경영진이 합당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졌다는 평가는 많지 않다. 외려 최 전 회장은 내부정보를 이용해 본인 손실을 회피한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부실의 책임자 따로 있고 부실을 견디는 사람 따로 있다. 현장의 선원들이다. 기업회생절차가 길어지는 가운데 한진해운 선원들은 배 위에서 일상을 감내하고 있다. 한진샤먼호 선원 14명도 마찬가지다. <한겨레>가 법정관리 이후 최초로 한진해운 화물선에 올라 해상 직원들의 심경을 직접 들었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27일 낮 최고기온은 20℃, 풍속은 3.6m/s였다. 날은 좋았으나 파도가 제법 쳤다. 27일 오전 11시40분께 기자단 17명을 실은 13톤급 ‘동해3호’가 한진샤먼호에 다가가자 사다리가 내려왔다. 현대중공업이 2006년 진수한 한진샤먼호는 갑판 길이가 304.07m이고 물 위에 나온 배높이가 57.95m다. 배가 아니라 빌딩으로 보였다. 중국 샤먼항 이름을 따 명명했다. 사다리를 타고 빌딩 2층 높이만큼 오르자 갑판에 올랐다. 한진해운 해상노조 등이 주관해 이날 낮 12시부터 3시간가량 선상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기업회생절차 이후 언론이 한진해운 화물선에 올라 선원들과 직접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진샤먼호는 한국에 돌아와 부산신항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도중 미국 연료회사가 기름값을 내지 않는다며 창원지법에 선박임의경매신청을 냈고 창원지법이 이를 인용하면서 지난 7일 이후 가압류 상태에 들어갔다. 한진샤먼호는 법원이 지정한 북위 35도00분 동경 128도54분에 위치한 ‘W2 앵커리지’ 지점에 묘박(배가 자신의 닻만으로 정박한 상태)해 있다. 지도상 직선거리로 부산항에서 약 14㎞ 떨어져 있으나, 실제로 동해3호로 두시간 걸렸다.

현재 한진샤먼호에는 선원 14명과 창원지법에서 압류재산 관리를 위해 파견한 직원 1명 등 모두 15명이 승선 중이다. 직원 14명 가운데 인도네시아 갑판수 2명을 뺀 12명이 한국인 선원이다. 선원 중 10명은 기업회생절차 전인 올 4월~7월말 승선했고 나머지는 10월초 승선했다.

<한겨레>와 인터뷰한 선원들이 입모아 먼저 언급한 것은 동료 선원들의 송환 문제였다. 한 기관사는 “한진샤먼호는 한국 영해에 있어 인터넷과 전화가 되지만, 외국은 상황이 다르다”라며 “당장 한진해운 소속 배가 매각돼 선원들에게 ‘하선(배에서 내려 돌아오는 것)하라’고 해도 도움이 없으면 쉽게 돌아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나라 화물항은 하루이틀 차를 타고 내륙으로 들어가야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며 “외국 항구에서 알아서 돌아오라고 하면 돈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아 큰 문제”라고 말했다. 기자단과 함께 승선한 이요한 한진해운 해상노조 위원장도 “노조의 첫번째 요구는 세계 여러 바다에 있는 해상 직원들의 무사 송환”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도 2003년 한진해운에 입사해 항해사로 8년간 근무했다. 한국 영해에 있는 몇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선원들은 정부와 회사의 지원없이 귀국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선원들은 처음 기업회생절차 소식을 듣고도 대부분 실감을 못했다. 이영빈 항해사(25)는 “올 7월27일 한진샤먼호에 승선했고 바다 위에서 ‘한진로마호가 싱가폴에서 압류됐다’는 기사를 보고 회사가 어려워진 걸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 항해사는 “그때는 실감이 안 갔다, 나중에 ‘기름을 최소로 사용하도록 이코노미 스피드로 줄이라’는 지시를 받고 (현실이)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6월 한진샤먼호에 승선한 임덕호 선장(40)도 “처음 소식을 듣고 ‘에이 설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진샤먼호는 법정관리 직전인 8월25일께 미국 동부 사바나항을 출항했다. 선원들은 아프리카 근처를 항해하다 법정관리 소식을 들었다. 바다 위에는 인터넷이 없다. 해상 직원들은 하루 한두번 위성통신을 통해 전자우편을 받는다. 뉴스도 전자우편으로 받아본다. 이름밝히기를 꺼린 한 기관사는 “본사와 통신 도중 ‘이제부터 천천히 부산항에 입항하라’는 지시를 받고 뉴스를 확인한 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사실을 알았다”며 “소식을 듣고 불안했다, 바다는 육상처럼 자유롭게 인터넷이 되지 않아 답답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용불안을 언급한 선원들이 많았다. 회사의 운명은 고용뿐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선원들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 병역 의무를 대신해 승선근무예비역 근무 중인 한 항해사는 “한진해운이 청산되어 한진샤먼호에서 내리게 될 경우 1년 더 근무기간을 채울 배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계약직인 인도네시아 갑판수 무하이민 마르주키(49)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모르겠다, (취업 알선)에이전시가 있다”고만 짧게 답했다.

현재 한진해운 쪽이 압류 결정에 재항고를 내어 사건이 최종 결정될 때까지 선원들은 계속 배를 지켜야 한다. 항해사 3명이 하루 3교대로 당직을 선다. 기관사 3명은 반나절씩 근무한다. 나머지 직원들은 각자 시간을 보낸다. 이요한 위원장은 “그저 쉬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무기력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전 경영진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해상 직원들은 기업회생절차 중인 사실을 알고도 회사의 요구에 배에 올랐다. 10월에 승선한 한 선원은 “휴가 중에 법정관리 소식을 들었다, 당황스러웠고 불안했다”면서도 “법정관리인 것을 알고도 승선한 것은 직원 입장에서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해상 직원들은 회생에 희미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한 기관사에게 바람을 묻자 “회생되면 좋겠다”고 짧게 답했다. 1998년 2월 실습생으로 처음 한진해운 배에 올랐던 임덕호 선장은 “세계 곳곳에 한진해운 컨테이너를 내리고 부리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제 그걸 못볼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라며 “신설법인 등의 방법을 통해서든 (회사를)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기준으로 한진해운이 선원관리 책임을 지는 선박(사선)은 총 55척이며 승선 중인 한국인 선원은 모두 420명이다. 이 사람들이 아직 배 위에 있다.

부산/글·사진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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