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투명한 경제문화 정착 기회로 판단…임직원 교육·윤리규정 개선·사례 설명회
이미 시행하던 ‘윤리경영’ 방침 강화…직원들은 ‘저녁이 있는 삶’ 누릴 수 있을 것 기대
이미 시행하던 ‘윤리경영’ 방침 강화…직원들은 ‘저녁이 있는 삶’ 누릴 수 있을 것 기대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김영란법)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기업들은 막판 준비와 점검에 분주하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도 설명회나 초청강연을 통해 이를 지원하고 있다. 영업활동 위축을 우려하는 일각의 목소리도 있지만, 자체 윤리규정 등을 통해 꾸준히 윤리경영을 강화해 온 기업들은 김영란법 시행이 건전하고 투명한 경제 질서와 문화를 북돋워 윤리경영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 실무 부서들을 중심으로 대비를 해 온 삼성그룹은 지난 21일에는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도 이 법과 관련된 논의를 했다. 삼성 법무팀은 이 자리에서 식사하거나 선물을 할 때 달라지는 점 등을 사장들에게 설명했다.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은 회의 뒤 “미국에서 하는 대로 하면 되겠더라”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사장단이 대외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많아서 미리 김영란법에 대해 공부하는 차원이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임원이나 직원들을 대상으로 따로 교육을 진행하지는 않지만, 김영란법과 관련 있는 업무를 하는 팀들은 사전에 공부를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전화, 팩스, 윤리경영 웹사이트 등을 통해 부정 위반 사례를 신고받는 등 윤리경영을 강화해 왔다. 또 국내외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 1회 집합, 온라인, 시청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 교육 참가자는 32만399명에 달한다.
현대차그룹도 2001년 제정한 윤리헌장을 바탕으로 임직원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윤리규정은 협력업체 대상 또는 사내 직원들 간의 금품 수수 및 요구, 청탁, 압력 행사 등에 대해 사내 징계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징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업무 중 불가피하게 취득한 선물에 대해서는 회사에 신고하고 즉시 선물을 반납하도록 하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더라도 엄격하게 정한 기존의 윤리규정을 준수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주요 행사인 신차 출시행사도 간소하게 치르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에는 신차 출시행사 때 특급호텔에서 식사와 기념품을 제공해 왔으나, 11월에 신형 그랜저를 출시할 때는 전시장 등을 발표회장으로 삼고 식사 대신 커피 등 다과류를 내놓는 방안을 짜고 있다.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은 “설명회를 통해 내부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직원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내놓는 업종별, 사례별 설명과 예시를 참고해 최종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4일 김영란법의 주요 내용과 사례별 문답, 점검 사항, 국민권익위 자료 등을 전 사원에게 이메일로 보내 숙지하게 했다. 서울 본사는 물론이고 울산 공장과 대전 대덕 연구소 등 사업장별로 설명회도 진행했다. 또 법 시행에 맞춰 사규와 ‘윤리경영 실천지침’을 보완하고, 임직원 교육 자료도 이 내용을 반영해 업데이트했다. 부서별로 법 시행 뒤 위축될 가능성이 있는 활동을 보완할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법 시행 뒤엔 임직원들의 준법 여부를 관리·감시하는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관련 예산 집행을 상시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임직원들 제보를 받는 창구도 운영하고, 법무팀에는 전담 직원을 배치해 수시 상담이 가능하게 했다.
엘지(LG)그룹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과 부정청탁 행위 유형, 수수가 금지되는 금품 항목 등 법률의 주요 내용을 임직원들에게 교육해 왔다. 엘지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본사 및 국내외 사업장에서 온·오프라인을 통해 교육에 나서고 있으며, 사내 법무팀은 관련 부서와 업무 수행 중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엘지그룹 관계자는 “협력업체로부터 경조사 관련 금품을 일절 받지 못하게 하는 등 1990년대 후반부터 내부적으로 윤리 규범을 강화해 왔다. 이런 행위를 규율하는 김영란법까지 마련돼, 여러 가지 상황별로 ‘질의-응답’(Q&A) 자료를 만들어 교육하는 등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엘지는 199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협력업체와의 공정한 거래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 ‘불공정거래 신고센터’를 설치한 바 있다.
포스코도 김영란법에 대비한 사내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법무·홍보팀을 중심으로 설명회를 열어 질의-응답을 진행한 뒤 수십 가지의 실례를 담은 매뉴얼을 만들었다. 또 기존 윤리규정 내용과 방향이 김영란법과 조화를 이루도록 검토 작업도 하고 있다. 포스코는 업무와 관련된 외부 인사와의 저녁 자리는 일단 피하는 대신 업무 약속은 점심시간을 주로 활용하고, 이미 잡힌 골프 약속은 취소하고 있다고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을 먹게 되면 (1인당) 3만원을 넘어서기 때문에 일단 저녁 약속은 잡지 않기로 했다”며 “술이 약한 임직원은 과도한 음주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도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지에스(GS)칼텍스는 실무 부서를 중심으로 국민권익위의 해설집과 교육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의 교육자료, 법무법인의 자료 등을 활용해 온-오프라인으로 교육하고 있다. 특히 대외업무 담당자들에겐 실무와 연계해 이 법의 취지와 적용 대상, 금지 사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28일 법 시행 이후엔 대외업무 부서 임직원들이 실제로 겪은 상황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재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 이 법 시행에 따라 ‘윤리 규범 실천규정’ 등 사내의 관련 규정들도 좀 더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보완 중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김영란법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04명 가운데 66%가 잘된 일이라고 답했다. ‘잘된 일’이라고 응답한 이들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27%가 ‘부정부패, 비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고, 11%는 ‘공무원·공직사회 변화를 기대’한다고 했다. 4대 그룹에서 홍보담당 고위 임원을 지낸 이는 “그동안 기업이 정부 쪽이나 언론과 청탁을 주고받는 등 너무 가까워진 것도 바람직하지 못했다. (견제 받지 않은) 기업의 경쟁력도 후퇴했다. 김영란법이 이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산업팀 종합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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