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롯데 입사 첫해 이사대우 승진
40여년간 신격호-신동빈 최측근
‘비오너 일가’로는 최초 부회장
“수사 압박에, 긍지 무너지면서 괴로워한 듯”
40여년간 신격호-신동빈 최측근
‘비오너 일가’로는 최초 부회장
“수사 압박에, 긍지 무너지면서 괴로워한 듯”
26일 검찰 출석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은 40년 넘게 롯데에 근무하며 요직을 두루 거친 그룹 내 2인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 부회장은 전날 소환된 황각규(62)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소진세(66)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총괄사장)과 함께 신 회장의 ‘가신그룹’으로 꼽힌다. 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정책본부 수장으로, 총수 일가와 그룹 대소사는 물론 계열사 경영까지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한 뒤 바로 그해에 관리담당 이사대우로 승진할 만큼 신격호 총괄회장에게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87년까지 14년간 호텔롯데에 근무하다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뒤 백화점 경영의 3대 요직으로 불리는 관리와 상품구매, 영업 업무를 고루 거쳤다. 1997년부터 10년간 롯데쇼핑 대표이사로 이 회사를 유통업계 1위 자리에 올려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부회장은 2007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그룹 정책본부장으로 있을 때 정책본부 부본부장이 됐다. 이어 2011년 그룹 정책본부장이 되면서 오너 일가가 아닌 인물로는 처음으로 부회장 직위에 올랐다. 지난해 신동빈 회장과 그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다툼 때는 신 회장이 승리하는 데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이 부회장은 의심되면 끝까지 파헤치는 철저함이나 불시에 매장을 방문하는 현장 점검으로 유명했다”, “소공동 롯데타운 건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그룹의 내실을 다지고 지속적 투자로 롯데쇼핑이 유통업계를 리드해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 “이 부회장은 임직원들의 윤리의식을 항상 강조해왔다”며 “고용 확대에 기여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구조조정 없는 인수·합병을 강조해왔다”고 했다.
이날 롯데그룹 임직원들은 종일 침통한 분위기였다. 그룹 정책본부의 한 임원은 “다들 충격을 받아 정신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임직원들은 꼼꼼한 성격의 이 부회장이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겪은 데 이어 최근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심각한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고위 임원은 “평생 교회 장로로서 원칙대로 산 그가, 수십년간 신격호 회장에 이어 신동빈 회장을 모시면서 일군 롯데가 어려움에 빠지고 긍지가 무너진 것을 가장 못 견뎌했을 것”이라며 “‘신동주 사태’도 겪고 수사에 따른 압박도 있으니까 너무 괴로웠던 듯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성품이 깔끔하고 꼼꼼한 스타일이라 검찰 소환을 엄청 불명예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롯데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이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최근 지병으로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운 아내를 돌보면서 더 어려운 처지에 몰린 것 같다고 전했다.
롯데는 장례를 그룹장으로 치르기로 했고,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졌다.
윤영미 선임기자 young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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