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다양성은 윤리적으로 옳기 때문에 추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와 가정, 나아가 사회를 이롭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에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지난 1월에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전통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까지 융합한 4차 산업혁명에서 경쟁력의 핵심은 무엇일까?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세계경제포럼 특별강연에서 “성별 다양성 확보”를 답으로 제시했다. 즉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이 새로운 혁명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유럽선 여성임원할당제 법제화
최근 5년새 11%→21% 급증
비율 높을수록 경영성과 높아 한국, 여성임원비율 고작 1.5%
경제활동참가율도 저조한 편
생산인구 감소시대 대안 떠올라 그런데 샌드버그의 주창과는 달리 미국 현실은 아직 답답하다. 국제 비영리기관인 ‘캐털리스트’가 뉴욕증시의 에스앤피500(S&P500) 지수에 편입된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대표이사의 비율을 집계한 결과 2015년 말 기준 4.2%에 그쳤다. 이사회의 여성 비율도 19.2%로, 압도적인 남성 우위다. 미국 주요 기업에서는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보이지 않는 장벽)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 활동의 자유가 강조되는 미국에선 법이나 제도로 이를 깨기란 어려워 보인다.
반면에 유럽 상황은 조금 다르다.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한다. 독일은 2년여 동안 치열한 찬반논란 끝에 지난해 여성임원할당제를 입법화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1천여 민간 대기업을 시작으로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을 30%로 채워야 한다. 2008년 노르웨이가 처음 도입한 여성임원할당제는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 유럽 8개국으로 확산됐다. 이에 따라 유럽 주요국에선 실제로 최근 몇년 사이에 여성 임원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가 조사한 기업의 이사회 구성 현황 자료(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보고서)를 보면, 범유럽 주가지수인 ‘스톡스600’(Stoxx 600)에 편입된 기업의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이 2010년에는 평균 11%였다가 지난해 21%로 5년 사이에 10%포인트나 높아졌다. 반면에 미국 에스앤피500 기업은 같은 기간 3%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유럽 국가들이 기업 내 여성의 지위 향상을 법으로 의무화하기까지 이른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인구 고령화 추세를 맞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경영진 내 여성의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더 높은 경영성과를 올리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분석 결과도 많다.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매킨지가 2007년부터 유럽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산출하고 있는 양성평등지수를 보면, 최상위 지수를 받은 기업군의 경영성과가 같은 업종의 최하위 지수 기업군보다 훨씬 높다. 예컨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동안의 이자·세금차감전 영업이익(EBIT)을 비교하면, 최상위 기업군은 평균 11.1%인데 최하위 기업군은 5.8%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매킨지는 2010년에 낸 보고서에서 최고위 경영진에 여성이 포진해 있는 기업과 여성이 한명도 없는 기업을 골라 각각의 매출액수익률(ROS)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비교분석한 결과도 내놓았다. 여성이 최고위층에 포진한 기업이 매출액수익률은 41%, 자기자본이익률은 53%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크레디스위스(CS)은행은 조사 범위를 전세계로 넓혀 여성 임원 비중과 기업 성과의 상관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2005년부터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지수에 편입된 40개국 2360개 기업의 실적을 파악하고 있는데, 역시 결과는 매킨지 보고서에서 나타난 경향과 같다.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집행임원 가운데 여성의 비중이 10% 이상인 기업과 5% 미만인 기업의 2014년 영업실적과 주식가치 변동치를 비교해본 결과, 전자의 자기자본이익률이 14.7%로 9.7%를 기록한 후자 기업군보다 훨씬 높았다.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액의 비율)도 22%의 차이를 보였다.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주주들에 대한 보상도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얘기다.
여성 임원 비중이 높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효과에 주목하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남성 중심의 편향된 의사결정을 견제할 수 있으며, 좀더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웨이크포리스트대학의 연구진은 기업 부패와 여성 리더십의 상관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20년 동안 탈세나 조세회피로 적발된 사례를 모아보면, 여성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둔 기업이 훨씩 적었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다. 보고서의 권유를 따르자면, 엄밀한 회계처리와 투명한 회계보고가 자리잡으려면 여성을 최고책임자로 앉히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여성의 경영리더십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도 여전히 많다. 미국에서는 여성 최고경영자의 단점으로, 지나친 온정주의 경향이라든지 외부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에 대한 대응능력 부족 등이 자주 거론된다. 미국 증권가에서는 경영진의 성별 분포와 장기적인 주가수익률 간에는 의미있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분석도 수시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큰 흐름으로 보면, 여성의 리더십 강화를 선진국에서는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인다. 특히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뒤 경제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커지면서 여성 경영인의 꼼꼼한 리더십의 가치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장단점을 거론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기업 전반에 퍼져 있는 유리천장의 강도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세다. 2014년 기준으로 200대 상장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은 1.5%에 불과하며, 고위공직자 중 여성 비율도 5%가 채 안 된다. 정부가 예산과 임원 인사를 통제할 수 있는 공기업 300여곳의 경우 여성 임원 비율이 고작 0.6%다. 기업 경영진 성별 구성의 극심한 불균형은 기업 경쟁력 차원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통계를 보면,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2013년 기준 50.2%로 회원국 평균 61.8%에 견주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경제활동참가율의 남녀 격차는 23%포인트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그만큼 여성 인력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증거다. 4년제 대학교를 나온 고학력 여성의 저조한 경제활동은 더욱 두드러진다. 만 25~64살 여성 인구 가운데 고학력 여성의 고용률은 2010년 기준 60.1%로 오이시디 평균 78.7%를 한참 밑돌고 있다.
대학을 나와 어렵게 좋은 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여성은 남성보다 승진 기회가 훨씬 좁다. 게다가 임신, 출산, 육아에 따라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여성의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다. 결국 국내 기업의 고질적인 남성 우위 문화에다 양성평등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까지 겹쳐 여성 경제활동의 정체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것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기업 내 여성의 지위 향상은 절대 과제이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kpark@hani.co.kr
최근 5년새 11%→21% 급증
비율 높을수록 경영성과 높아 한국, 여성임원비율 고작 1.5%
경제활동참가율도 저조한 편
생산인구 감소시대 대안 떠올라 그런데 샌드버그의 주창과는 달리 미국 현실은 아직 답답하다. 국제 비영리기관인 ‘캐털리스트’가 뉴욕증시의 에스앤피500(S&P500) 지수에 편입된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대표이사의 비율을 집계한 결과 2015년 말 기준 4.2%에 그쳤다. 이사회의 여성 비율도 19.2%로, 압도적인 남성 우위다. 미국 주요 기업에서는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보이지 않는 장벽)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 활동의 자유가 강조되는 미국에선 법이나 제도로 이를 깨기란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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