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촉구 서명 딜레마
경제단체들의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에 삼성에 이어 씨제이(CJ)와 오씨아이(OCI)가 동참했거나 동참하기로 했다. 반면 나머지 그룹들은 쟁점법안 처리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서명운동이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된 것에 부담을 느끼며, 서명운동 부스를 설치하지 않거나 아직 참여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는 등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씨제이는 21일 오후 서울 남산 본사 1층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준비한 서명운동 부스를 설치하고 서명을 시작했다. 씨제이는 “(경제계가 국회 처리를 촉구하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사업 연관이 많고, 그룹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전경련 요청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씨제이는 서명부스를 다음주부터 서울 중구 쌍림동 제일제당센터 등 다른 계열사에도 순차적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30대 그룹인 오씨아이는 다음주 중 서명운동 부스를 설치하고 동참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주요 재벌 중에서 전경련이 마련한 서명운동 부스를 설치했거나 할 계획인 곳은 삼성, 씨제이, 오씨아이 등 3개다. 삼성은 18일부터 서울 서초사옥 1층에 서명운동 부스를 설치한 데 이어 20일에는 수요사장단협의회를 마친 뒤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단체로 서명했다.
반면 대다수 그룹들은 서명운동 동참 여부에 대해 아직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전경련으로부터 15일 참여 요청을 받은 현대차와 에스케이는 “참여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만 밝혔다. 엘지는 이날 서명운동에 참여한다고 밝혔으나, 서명운동 부스는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엘지는 “임직원들이 온라인을 통해 자발적으로 서명에 참여하도록 안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도 서명운동 부스 설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주요 그룹들이 서명운동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서명을 계기로 정치적 논란과 관제동원 시비가 일고 있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기 때문으로 보인다. 4대 그룹의 고위 임원은 “기업으로서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관례인데, 최근 정치적 논란이 커져 고심 중”이라며 “노조가 있는 기업은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또다른 4대 그룹 임원은 “서명운동의 본질은 사라지고 정치적 논란만 벌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30대 그룹의 한 임원은 “나서기도 어렵고, 빠지기도 어려운, 정말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명에 참여하는 씨제이의 경우 이재현 회장이 불법행위와 관련해 실형선고를 받은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점도 다른 기업들을 신중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재벌그룹의 한 임원은 “자칫 기업들이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해 서명에 참여한다고 국민들 눈에 비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38개 경제단체를 대표해 서명운동을 주관하는 대한상의는 이날 경남지역 상의 회장단이 쟁점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과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 상의가 (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야당에 대해 낙선운동 방침을 밝혔다고 보도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상공회의소법(55조의 2)에서는 상의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거나 낙선운동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박현정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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