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6개 금융협회에 공문
“소속사·방문자 서명 받아라”
청와대는 전화로 현황 묻기도
대통령·총리 이어 장관들도 합류
노동계 “재계·청와대의 여론 공작”
“소속사·방문자 서명 받아라”
청와대는 전화로 현황 묻기도
대통령·총리 이어 장관들도 합류
노동계 “재계·청와대의 여론 공작”
대한상공회의소 등 38개 경제단체가 추진하는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이 강제성을 띤 ‘관제 서명운동’이란 논란에 휩싸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일 “오죽하면 국민들이 그렇게 나서겠느냐”며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입법 관련 서명운동에 참여해 적절성 논란을 부른 바 있다. 하지만 ‘순수 국민운동’이라던 청와대의 설명과는 달리, 주최 쪽은 서명 참여자를 늘리기 위해 소속 기관들의 임직원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의 서명도 이어지고 있어, 행정부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장외투쟁’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20일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한상의는 지난 14일 손해보험협회·생명보험협회·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 등 6개 금융협회에 공문과 입법 촉구 동의서를 보내 임직원들은 물론 소속 기업, 방문자들에게까지 서명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일부 협회는 소속 금융회사들에 이 공문을 전달했으나 노조 등의 반발에 부딪혀 중단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상의는 공문에서 “협회·단체 사무국과 회관 입주사 임직원, 회원사 임직원, 회관 내방자 등에게 서명을 받을 것”을 요구했고, “서명인원 일일현황을 취합해 송부하고, 현수막을 제작하고 온라인 서명 홍보와 동참을 유도하라”는 구체적인 방법도 지시했다. 이를 받은 생보협회는 다시 각 보험사에 “회사 소속 임직원과 보험설계사에게 서명을 받으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해당 협회 노조와 직원들은 사실상 강제성을 띤 ‘서명 할당’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기진 사무금융노조 조직실장은 “공문에 서명 현황을 매일 보고하도록 했는데 소속 협회나 회원사는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직원들은 사실 내용도 잘 모른 채 위에서 하라고 하면 할 수밖에 없다”며 “경제활성화법이 노조에 불리한 내용이라 협회 차원에서 서명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내서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생보협회가 법률적으로 독립 사업자인 보험설계사한테까지 서명을 받으라고 한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에 대해 대한상의는 “서명 참여 협조 공문을 보냈고 서명자가 취합되면 제출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며 “일부 협회나 회원사가 반강제적 서명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했을 수 있으나 상의 쪽에서 지시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서명운동이 청와대와의 교감에 따라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청와대에 서명 실적을 보고한 적은 없지만, 18일 청와대에서 전화로 서명 현황을 물은 적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3일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노동관계법 등 ‘관심법안’ 처리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서 앞장서서 나서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한 직후, 대한상의는 긴급 간담회를 열어 대통령 담화에 대한 경제계 역할과 경제활성화 법안의 국회 통과 촉구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날 ‘경제살리기 입법을 촉구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데 이어, 18일 오전에는 38개 경제단체 공동으로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 운동본부’를 꾸려 서명운동을 본격화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한반도선진화재단, 바른교육권실천행동 등 보수 성향 8개 단체로 구성된 민생경제살리기 국민운동본부도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로터리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박 대통령이 첫날 서명한 이후, 황교안 국무총리와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 등도 서명 대열에 합류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과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 “재계와 금융계 및 일부 사용자단체들이 청와대와 교감해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펼치는 전형적인 ‘관제 서명’이자 ‘여론공작’의 일환”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단체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서명운동을 벌인 것”이라며 “청와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최혜정 유선희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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