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상선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채권단이 요구한 ‘근본적인’ 추가 자구안을 아직 제출하지 못한데다 대규모 채권만기가 돌아오는 4월과 7월에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가 고조되면서 현대상선이 자체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채권단 요구 자구안 제출 못해
7월까지 갚아야 할 채권 5천억
채권단 “현대그룹 용단 내려야” 압박
정부 선박펀드 지원받으려면
부채비율 400% 이하로 줄여야
현대상선 “자구책 협의 계속중”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오는 4월말과 7월말 각각 2208억원, 2992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이 중 만기 연장이 어려워 기간 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공모채 규모는 4월에 1200억원, 7월에 2400억원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7월까지 갚아야 하는 회사채가 5천억원에 달하는데 이를 막지 못하면 은행은 만기를 연장해준다 해도 공모채 투자자들은 선박 압류 등의 조처를 취하지 않겠느냐”며 “추가 자금 투입은 어려운 만큼 현대그룹이 정부나 채권단 지원을 기대하지 말고 용단을 내려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4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에 대해선 회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구안 등 회생방안에 대해선 산업은행과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의 실적이 나아지지 않는 등 위기론이 커지면서 주가도 52주째 곤두박질치고 있다. 1년 전(2015년 1월19일 종가 기준)만 해도 1만100원이었던 현대상선 주가는 19일 2800원까지 떨어졌다. 기업신용도를 평가하는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11일 현대상선 신용등급을 ‘BB’에서 ‘B+’로 하향조정한 바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상선은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 없이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자구 계획이나 외부 지원 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으면 등급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2013년말부터 지금까지 현대로지스틱스 등 사업 부문 매각과 현대오일뱅크 지분 등 자산 매각을 통해 3조5822억원을 확보했다. 2013년말 1186%에 이르던 부채 비율을 지난해 3분기 980%까지 줄였지만 여전히 부채 규모는 6조3144억원에 이른다. 단기 유동성 문제 해결이 시급하지만 지난달 정부는 선사들의 자구 노력을 강조하며 추가 자금 지원 대신 선박 건조 때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선박펀드를 대책으로 내놨다. 그러나 12억달러(약 1조4500억원) 규모의 이 선박펀드 역시 지원받으려면 해운사들이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춰야 한다. 김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현대상선이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추려면 9342억원 이상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지원, 현대증권의 재매각 등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맞추기 어려운 조건이다.
정부가 내세운 400% 부채비율 기준에 대해 해운업계 불만은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약 처방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의사가 헬스이용권을 끊어주며 건강해지면 다시 오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정부가 해운업계를 도우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대 해운사 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던 해양수산부도 원칙은 유지하면서도 해운사들이 자구 노력에 실패하면 정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선사가 회생 노력을 해야 하는데 노력하지 않거나 실패하면 채권단이 지원을 할 수 없고, 그 경우 기업이 정리되는 게 일반적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세종/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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