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황이 내년에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중소형 조선사인 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 에스피피(SPP)조선 채권단에서 시중은행이 아예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제 조선사 채권단은 국책·특수은행으로만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산업은행은 지난 8일 에스티엑스조선에 45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2013년에 에스티엑스조선의 자율협약(채권은행 공동관리) 개시 당시 지원하기로 했던 4조5000억원 가운데 미집행된 금액이다. 그러나 산업은행 주도의 채권단 일원인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은 23일 이런 추가 지원안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하나은행은 이후 반대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해 채권단에서 빠지는 단계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기업의 청산가치에 해당하는 정도만 보상받지만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사실 이탈 움직임은 우리은행에서 먼저 나왔다. 우리은행은 채권단이 지원안을 최종 결정하면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다. 우리은행은 이미 에스티엑스조선 여신을 ‘회수의문’ 단계로 분류하고 지난달 100% 충당금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소속의 나머지 시중은행인 신한은행은 아직 찬반 여부를 고심하고 있지만, 찬성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에스티엑스조선 채권단의 지분 비율은 산업은행 48%, 수출입은행 21%, 농협 18%, 우리은행 7%,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각각 2% 안팎이다. 우리·하나·신한은행이 채권단에서 탈퇴해도 추가 지원안 가결요건인 75%를 충족하지만, 국책·특수은행을 뺀 시중은행은 모조리 손을 떼는 모양새가 된다.
이는 올해 조선사 ‘빅3’가 7조원대 영업손실을 내는 등 조선업 자체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업종으로 분류되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중소형 조선사는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아 여신 정리가 쉬운 것도 시중은행이 발을 빼는 이유가 됐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주 금융감독원에 공문을 보내어 에스피피조선에서도 주채권은행 자리를 최대 채권자인 수출입은행에 넘기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10월 중소형 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 채권단에서도 빠지는 등 조선업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대폭 줄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중소형 조선사들의 기업 회생 전망이 불투명한 탓이다. 한때 조선사 ‘빅4’에 들었다가 중소형 조선사로 재편된 에스티엑스조선은 2년여간 채권단에서 4조원대 지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완전자본잠식(-1조9천억원) 상태다. 에스피피조선은 올해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700억원대 흑자를 내는 등 구조조정을 마치고 채권단이 매각에 나섰지만 새로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국책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중소 조선사들에서 발을 빼려는 건 조선업 시황이 내년에도 나아질 걸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조선사 채권단이 국책·특수은행으로만 꾸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미영 김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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