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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해킹? ‘시빅해킹’!…정보기술이 만들어내는 도시 삶의 혁신

등록 2015-11-22 20:28

 지난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5 사회혁신 콘퍼런스’에 참석한 오스카르 몬티엘 코데안도멕시코 공동대표가 멕시코의 시빅해킹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지난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5 사회혁신 콘퍼런스’에 참석한 오스카르 몬티엘 코데안도멕시코 공동대표가 멕시코의 시빅해킹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한국은 디지털 정보 인프라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시 스마트폰 보급률은 90% 이상으로, 세계 주요 도시들 중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늘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항목은 시민들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련된 평가다. 지난 1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5 삶의 질’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률은 10년째 1위다. 이런 통계들이 정보기술과 삶의 질의 상관성을 절대적으로 대변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정보기술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히 보여준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회 협력을 이끌어내는 ‘디지털 사회혁신’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로 몇몇 글로벌 도시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중이다.

디지털 통해 사회협력 이끄는 실험 활발
신속·창의적 협업으로 공공문제 해결
멕시코, 예산낭비에 시민들이 앱 개발

투표·청원 아닌 직접적인 의사소통 창구
“한국, IT거버넌스 속 시민 자리 좁아”

지난 18일 서울시가 서울시청에서 개최한 ‘2015 사회혁신 콘퍼런스: 사회혁신을 통한 도시 삶의 전환’에서는 각국 정부 관료 및 도시·정보통신기술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시에서의 디지털 사회혁신 사례를 공유했다. 특히 ‘시빅해킹’(Civic Hacking)이라는 생소한 개념과 활동들이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시빅해킹은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공공의 문제를 풀어내자는 사회운동이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시빅해킹 시민단체인 코데안도멕시코의 오스카르 몬티엘 공동대표는 시빅해킹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개인 정보를 훔치는 범죄자라든지, 어노니머스와 같은 정치적 어젠다를 위한 해커단체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죠.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해킹은 긍정적인 영향도 가져올 수 있어요. 시빅해킹이 대표적이죠.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시민들이 신속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협업해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도시의 사회 이슈를 해결하는 일을 하죠.”

미국의 대표적인 시빅해킹 시민단체 ‘코드포아메리카’가 보스턴시에 제안한 ‘소화전 입양하기’ 애플리케이션. 2011년 폭설로 교통이 마비된 거리의 소화전 위치를 표시해 시민들이 소화전을 사용·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소화전 입양하기’ 누리집
미국의 대표적인 시빅해킹 시민단체 ‘코드포아메리카’가 보스턴시에 제안한 ‘소화전 입양하기’ 애플리케이션. 2011년 폭설로 교통이 마비된 거리의 소화전 위치를 표시해 시민들이 소화전을 사용·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소화전 입양하기’ 누리집
코데안도멕시코가 2013년 멕시코시티에서 벌였던 활동 사례를 보자. 당시 멕시코 의회는 법안 검색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을 위해 민간 소프트웨어 회사와 2년간 930만달러의 계약을 맺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멕시코시티의 프로그래머들을 중심으로, 의원들의 법안 검색을 돕기 위한 단순한 앱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높아졌다. 코데안도멕시코는 이러한 시민들을 모아 거리로 뛰쳐나가는 대신, 법안 검색 앱을 개발하는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10일간의 참가기간을 주고 의회 예산의 0.001%인 9300달러를 상금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 앱 173개가 개발되었고, 코데안도멕시코는 그중 우수한 앱 5개를 의회에 제출했다. 비록 그들이 제출한 앱이 의회에서 채택되지 않았지만, 앱 개발 계약을 무효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의 시민단체인 ‘코드포아메리카’에서부터 시작된 시빅해킹 운동은 멕시코를 비롯해 일본, 아일랜드 등 31개 국가에 파트너 기관을 두고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펠로’라는 지역 자원활동가들을 모아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데이터 프로그램이나 앱을 개발한다. 한 지역에서 개발된 프로그램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지역에서 이를 가져다 개발해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 보스턴에서 폭설로부터 소화전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된 ‘소화전 입양하기’ 앱은 호놀룰루의 ‘쓰나미 경보기 입양하기’와 오클랜드와 시애틀의 ‘배수구 입양하기’ 앱으로 진화했다. “기존에는 시민들이 투표와 서명, 청원 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표현했다면, 시빅해킹은 시민들에게 훨씬 편리하면서도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제공해줍니다. 시민들이 우리가 사는 도시 정책에 불평 불만만 늘어놓지 않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직접 행동할 수 있도록 하죠.” 오스카르 대표는 시빅해킹은 도시 혁신뿐 아니라 시민사회 역량을 높이는 등 시민사회의 혁신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빅해킹 파트너 기관인 ‘코드포서울’의 활동을 비롯해 정부나 지역 현안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할 수 있는 플랫폼, 공공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구축 사업들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로 평가된다. 이상돈 한국정보화진흥원 책임연구원은 “디지털을 통한 사회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포럼에 참석한 국내 연사들은 명실상부한 정보통신기술 강국인 우리나라는 전자정부와 유비쿼터스 기반의 공공서비스 사업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이지만, 실제 그 거버넌스 속에서 시민들의 자리는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흥 비영리아이티지원센터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중앙정부를 비롯해 지방정부들도 정보 보안에 대한 우려로 다른 나라보다 시민단체와의 협력에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보인다. 시민단체들의 참여는 허용하되, 정보 제공만을 요청하고 실제 정부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시민단체와의 디지털 협력에 좀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정부 태도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비해 행정적으로 공공문제 참여 경험이 적은 우리나라 비영리기관들도 행정 운영 능력을 향상하고 사회 리더십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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