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생산본부 조립2부 직원들이 위기 극복과 타개책 마련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16일 아침 8시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적막에 휩싸였다. 서울 여의도 1.5배 크기의 드넓은 조선소에선 망치 소리는커녕 용접 불꽃 한 점 보이질 않았다. 생산공정이 완전히 멈춘 것이다. 대신 안전모를 쓴 현장 노동자들은 노사가 공동으로 마련한 토론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성근 옥포조선소장은 “조선소 공정이 멈추는 건 명절에나 있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3분기 연속 적자에 올해 6조 손실 예상
협력업체 포함 전직원 모여 자유토론
“책임 있는 해법 내놓으라” 성토 속
“원가절감 노력하자” 다짐하기도
“작업 멈춘 4시간, 육상 출발전 정적
내년부턴 달라진 모습 보여주겠다”
사상 최악의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대우조선은 이날 협력업체를 포함해 5만여명의 직원이 참여한 ‘노사 합동 전사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점심때까지 각 근무처에서 팀별로 4시간 동안 이어졌다. 현장 노동자들은 토론회 도중 울분을 쏟아냈다. 내업팀 가공현장반 직원은 “입사 이후 21년 동안 묵묵히 현장에서 일만 해왔는데 수조원 적자가 생긴다는 뉴스에 기가 막힌다”고 허탈해했다. 또다른 직원은 “노동자들은 위기 극복에 동참한다고 임금 동결까지 했다. 경영진이 그동안 투명 경영을 했다면 이 지경까지 왔겠느냐. 책임 있는 해법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작업장으로 향하는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 대우조선해양 제공
40여년 역사를 지닌 대우조선이 협력사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토론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토론회는 거제 옥포조선소 현장과 서울 본사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올해 들어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은 연말까지 순손실만 6조원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토론회는 위기 상황에 빠진 회사를 구하기 위해 노사가 함께 타개책을 모색하자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공적자금 4조2천억원이 투입되는 상황에 대해 경영진과 현장 직원들 모두 책임을 통감했다. 토론회에선 “회사가 어려운 만큼 추가 비용이 들지 않도록 한번에 작업을 완료하겠다” “주인의식을 갖고 원가 절감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도 이어졌다. 조현우 대우조선 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일부 경영진의 자리 욕심과 저가 수주 등의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경영진은 이제 더는 위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노조의 판단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영 정상화의 키는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만큼 이제는 노동자들이 힘을 내고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응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성근 소장은 “유가 하락의 영향까지 겹쳐 해양플랜트 사업의 손실이 컸다. 8 대 2로 하던 해양과 선박 수주 포트폴리오를 5 대 5 수준으로 다시 짜고 있다. 우리가 가진 특화된 기술이 많은 만큼 내년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은 고용과 수출 등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대우조선은 특히 부산·울산·경남 지역내총생산(GRDP)의 10%를 차지할 만큼 지역경제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선업 불황에 지역경제마저 위축되자 대우조선 직원들 사이에선 “대우조선 다닌다고 하면 장가도 못 간다”는 농반진반의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거제시가 5일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내놓는 등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이날 대우조선 직원 4만여명이 공정을 멈춘 4시간은 초대형 원유운반선을 작업하는 시간으로 계산했을 때 3분의 1척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성근 소장은 “오늘 조선소의 정적이 마치 육상선수가 스타트를 하기 전의 정적처럼 느껴졌다. 새 출발을 위해 다시 뛸 수 있도록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경영정상화 계획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