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7일 강원도 홍천의 한 인삼밭에서 트랙터가 파낸 수삼을 농민들이 주워담고 있다.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할 때 인삼밭은 제철을 맞는다. 전국 인삼농가는 9~10월이면 공들여 키운 인삼을 수확하느라 분주하다. 지금 밭에서 수확하는 인삼은 2011년에 1년근 모종을 심어 5년간을 키워낸 ‘6년근 수삼’으로, 대개는 가공 뒤 홍삼제품으로 소비된다. 6년 만의 수확이니 노랫가락이 흘러나올 법하다. 하지만 농가의 손길은 마냥 흥겹지만은 않다. 수확철을 맞은 밭에 모종을 심던 2011년은 국내 홍삼시장이 정점에 올랐을 때였다. 이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홍삼시장은 침체와 위축을 거듭하더니 정점 대비 10% 넘게 쪼그라들었다. 이에 기대고 있던 인삼산업조차 위기라는 얘기가 나온다. 올해의 인삼이 영글던 지난 5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홍삼시장 2000년대 후반 급팽창
연간 20~30% ↑…2011년 이후 꺾여
한약재 불신 틈새로 전성기 향유
글로벌 경제위기 뒤 정체기로
원재료 관리 강화 등 제도 정비 시급
수출은 중동 겨냥 할랄 인증 추진
홍삼스파·라떼 등 제품 개발중
아시아 수요 편중 한계 넘어서야
홍삼제품은 2000년대 후반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중국산 한약재 파동 등을 거치며 ‘보약’이 이른바 신뢰의 위기를 겪을 때, 홍삼시장은 반대로 급성장했다. 업계가 추산한 홍삼시장 규모는 2005년 3800억원에서 2011년 1조4300억원으로 3~4배나 불어난다. 이는 케이지시(KGC)인삼공사가 보유한 ‘정관장’ 브랜드의 신뢰성에 더해 사람들의 관심사가 ‘웰빙’과 ‘건강’으로 빠르게 이동한 결과였다.
하지만 홍삼시장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으며 변화를 겪게 된다. 2000년대 후반 연간 20~30%씩 덩치를 불리던 성장세가 한풀 꺾였고, 급기야 2012년 이래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인삼공사는 “한의원에서 짓는 보약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서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건강보조제로 홍삼이 관심을 끌었다”며 “이후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이 경쟁에 나선데다 홍삼도 브랜드가 난립하면서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를 보면, 2013년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홍삼이 전체 시장의 39.5%(5869억원)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어 백수오나 헛개나무 추출물 등인 개별인정형 제품 16%(2324억원), 비타민과 무기질 12%(1747억원), 프로바이오틱스 5%(804억원), 알로에 4%(628억원) 순으로 시장을 배분하고 있다. 홍삼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2600억원으로 추산되며, 정점 대비 12%가량 감소했다. 이 시장에서 인삼공사의 점유율은 50~60% 수준이다.
홍삼산업이 성장을 멈추면 인삼산업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인삼은 화학비료 사용이 금지되고 농약도 일부 제품만 허용하기 때문에 병해충 관리가 쉽지 않다. 그래서 주인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할 만큼 경작인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작물이다. 인삼이 고부가가치 상품이긴 하지만 키워내는 시간이 길다 보니 농사짓는 이들이 줄면서 인삼 생산량도 감소하고 있다. 실제 인삼을 심기 전에 2년간 토양개량 작업을 해야 하고, 1년근 모종을 이식하고 5년간 공들여 농사를 지어야 한다. 7~8년 앞을 내다보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만큼 일부 계약재배로 부담을 던다 해도 시장 변화에 대한 위험부담이 큰 셈이다.
2 땅에서 캐낸 수삼은 흙과 이물질을 털고 원삼과 파삼을 구분해 상자에 담는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 성장세를 이어가던 인삼산업은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내수경기 침체, 농가 고령화 등의 요인이 겹치며 홍삼보다 앞서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 자료 등을 보면, 인삼 재배 면적은 2009년 1만9702㏊에서 지난해 1만4652㏊로 줄었다. 연간 생산량도 이 기간 2만7460t에서 2만978t으로 23.6% 감소했다. 소비 감소 추세도 뚜렷하다. 1인당 소비량은 2009년 0.48㎏에서 지난해 0.35㎏으로 떨어졌다. 인삼공사는 “수삼은 먹기가 쉽지 않아 홍삼제품으로 섭취하는데 홍삼은 비용이 만만치 않고 필수재도 아니다 보니 경기 침체기에 소비가 느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삼은 가공된 홍삼과 아울러 대표적인 수출 효자상품으로 불렸지만 이마저 정체로 접어들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수출액이 2011년 1억8900만달러에서 2013년엔 1억7500만달러로 7.4% 줄어들었다. 수출 경로도 일부 국가에 치중돼 있다. 지난해 수출국이 104개국에 달하지만, 중국·일본·대만·홍콩 등 아시아 4개국 수출액이 전체의 78.8%나 된다. 생산·유통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혁신을 통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촌경제연구원 박기완 박사는 “홍삼제품이 고가이다 보니 선물용 외엔 가정용 소비에 한계가 있다”며 “신규 재배지는 줄고 저가의 중국산 삼 사용 등 소비자 신뢰를 얻지 못하는 홍삼제품도 쏟아지다 보니 인삼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3 구매장에 보내진 수삼은 깨끗하게 씻어 증기시설에서 쪄낸다. 증기시설에 들어가기 전 대기중인 수삼들. 사진 케이지시인삼공사 제공
이런 상황에서 국내 시장을 더 키우려면 소비자가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인삼과 홍삼제품의 성분, 규격 등을 표준화하고, 엄격한 안전성 검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급성장기에 홍삼시장에 업계가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원재료 관리에 대한 불신도 아울러 커진 상태다. 박기완 박사는 “정관장 브랜드를 앞세운 인삼공사의 독주 속에 농협홍삼과 인삼농협 등 개별 조직들이 난립하며 다양한 인삼 브랜드를 쏟아내고 있는데 영세 가공업체들을 조직화하고 하나의 통합 브랜드를 만들어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인삼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농가 지원책도 필요하다. 인삼공사는 “인삼농사의 대를 잇는 40대 미만 농민과 새로 인삼농사를 지으려는 귀농인들을 대상으로 각종 교육지원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인삼을 키워내야 하는 만큼 농가의 생계를 돕기 위한 금전적인 지원책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위기감을 느끼고 2012년 인삼산업 중장기발전 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 7월에도 보완대책을 추가로 발표했다. 2018년까지 2천억원을 투자하고 제도 개선 등 4개 분야 27개 과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경작신고 의무화로 재배 단계부터 안전성을 높이는 한편 주관적인 기준으로 분류하던 40여종의 수삼 등급제를 간소화하고 인삼의 수확연도를 표기하는 것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아시아에서나 관심 있는 홍삼을 중동, 유럽 등의 시장에서도 팔기 위한 노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슬람 율법에 따른 할랄 인증을 추진하고 중동·유럽 등에 안테나숍 운영도 확대할 방침이다. 인삼공사도 이에 발맞춰 홍삼제품 8개가 할랄 인증을 받았다. 인삼공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홍삼밖에 없는 상황에서 수출 국가를 넓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서양인에게도 접근 가능한 홍삼스파, 홍삼라떼 등 수출 국가에 맞춘 현지화 전략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