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비서 게임
한국비서협회, ‘모두의 경영’ 여비서 성적 상품화 취급 항의
여성 비서들이 모바일 게임에 화났다. 한국비서협회는 25일 모바일 게임 ‘모두의 경영’이 여성 비서 캐릭터를 성적으로 비하하고 있다며 개발사 이펀컴퍼니리미티드에 항의 공문을 발송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모두의 경영’은 이달에 출시된 스마트폰용 게임으로 게이머가 경영자가 되어 자신의 기업을 꾸려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게임 내 도우미로 등장하는 여성 비서가 성적 상품화 대상으로 그려져 전문 직종인 비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게 협회의 주장이다. 이민경 한국비서협회 회장은 “여성 비서 캐릭터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26만명 종사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고치지 않으면 강력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는 경고를 서한에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실행하면 시작과 동시에 여성 3명과 남성 1명 등 총 4명의 비서 가운데 한명을 고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여성 비서는 고르는 과정에서부터 업무능력은 배제되어 있고 가슴, 허리, 엉덩이 사이즈와 같은 신체 특징이 주요 요소로 등장한다. 이후 음성 콘텐츠로 나오는 비서의 대화 내용도 “회장님, 혹시 화끈한 것을 좋아하시나요? 맡겨만 주세요”, “회장님, 저랑 함께하시면 즐거우실 거예요” 등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펀컴퍼니리미티드가 개발한 이 게임은 이달 출시 뒤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가장 많은 이용자가 찾는 앱 장터인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지난주(17~23일) 무료 앱 게임 분야 1위를 기록했고, 이주에도 2위를 달리고 있다. 사용자 평가도 6만건에 육박하며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둘째로 큰 앱 장터인 애플 앱스토어에서도 1만3천건이 넘는 평가를 기록중이다.
이민경 회장은 “비서직은 최고경영자(CEO)와 가까운 거리에서 행정지원과 의사결정 조언 등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는 전문 직종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게임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젊은층에게 왜곡된 직업 정보를 제공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게임이 반노동적이거나 왜곡된 경제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능력 없는 직원은 단칼에 해고!”라고 요령을 선전하고, “투자수익률은 역시 주식! 무역은 덤~”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현재 청소년 불가 및 아케이드 게임은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심의하고 등급을 분류하지만 모바일 게임은 애플·구글 등 유통사업자가 자체 심의해 등급을 분류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쪽은 “모바일 게임이라도 사후관리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있으나 게임 콘텐츠 안의 대화 내용 등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직능단체에서 게임에 대해 항의 서한을 발송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모바일 콘텐츠가 지니는 사회적 의미가 커지는 상황을 반영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어린이·청소년용 디지털 콘텐츠 평가 누리집 ‘공부하는 가족’을 운영하는 최호찬 대표는 “지금까지는 게임이 주류 대중문화에서 소외된 서브컬처(하위문화)로 인식되었는데 모바일 게임의 등장과 함께 엄연한 주류 문화로 편입되면서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펀컴퍼니리미티드는 지적을 받아들여 다음 업데이트에서 문제를 고치겠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이 회사는 “8월말~9월초 업데이트 때 여자비서 소개 부분을 남자와 동일하게 (신체 사이즈를 빼는 등) 적용할 예정이며, 문제 발언의 비서 성우 녹음은 삭제될 예정이다. 불편함을 느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고 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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