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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단독] ‘꽃분이 노조’ 두 번 울린 대전노동청

등록 2015-08-03 01:23

에어컨 없는 찜통 같은 공장
하루종일 의자 없이 서서 작업
법이 주라는 월1회 휴가도 못받아

하청업체 노동자들 노조설립 신청
대전청 “규약서 ‘정치’ 글자 빼라”
보편화한 표현에 ‘어이없는 퇴짜’
충북 청주 오창산업단지의 한 화장품공장에서 일하는 마흔두살 박민경(가명)씨와 동료들은 공장을 ‘오창 실미도’라 부른다. 지극히 열악한 노동조건을 빗댄 표현이다. 대기업에 화장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공장 노동자 150여명 가운데 130여명이 박씨 같은 비정규직 여성 하청노동자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지만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나온 적은 없다.

박씨와 동료들 시급은 올해 최저임금인 5580원. 박씨는 기본급에 휴일근로 하루와 연장근로 42시간에 대한 수당을 포함해 지난달 156만4720원을 받았다. 사회보험료 등을 떼고 나니 실수령액은 147만원이었다. 이 돈으로 혼자 사는 방 월세 25만원과 입원한 오빠의 병원비 20여만원을 보탠 뒤 전기·가스·수도·전화 요금 등을 내고 나면 그야말로 먹고살기도 빠듯하다.

스킨·로션·마스카라 같은 화장품 병에 뚜껑을 돌려닫는 게 그의 일이다. 처리해야 할 물량이 많다 보니 “너무 빨라서 눈이 돌아갈 지경”이고 “손바닥엔 늘 물집이 잡혀” 있다. 한번에 1시간50분~2시간을 내리 일하는데 많을 땐 그새 4000개를 조립한다. 2초당 1개꼴이다. 틈틈이 큰 상자에 화장품병 담는 일도 해야 한다. 에어컨도 없어 “찜질방 같은” 공장에서 하루 종일 선 채로 일한다.

박씨는 “가장 억울한 게 어쩌다 쉬어도 결근 처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입사 넉달째인 박씨에게 회사는 휴가를 주는 대신 “입사한 지 1년이 안 된 이가 쉴 경우 2년차에 발생할 휴가에서 하루를 깐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은 이런 때 한달에 하루 휴가를 주도록 정하고 있다. 법이 보장한 생리휴가도 쓸 수 없다. 1990년부터 25년째 충북 청주·진천 쪽 공장 20여군데를 전전한 박씨는 물량이 줄어들면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존재였으나, 해고 30일 전 예고통지를 받아본 적도, 서면으로 된 해고통지서를 받은 적도 없다. 이 모두가 법 위반이지만, 박씨는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나왔단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달 대전·충북 지역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 10여명이 모여 ‘장그래 꽃분이 노동조합’(꽃분이노조)이 만들어진다는 얘기에 박씨가 노조 가입을 결정한 배경이다. 박씨는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노조에 들어가면 그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의 소박한 꿈은 노동청의 ‘딴죽’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꽃분이노조의 설립신고서를 받은 대전고용노동청이 지난달 17일 노조규약에서 ‘정치’라는 글자를 빼라며 보완을 요구한 탓이다. 이 노조 규약은 설립목적을 밝힌 2조에서 “(조합원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조합원의 공동이익을 옹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꽃분이노조 김홍남 위원장과 노동청 김아무개 담당 과장의 통화녹음을 들어보면, 김 과장은 “노조의 정의에 정치나 이런 게 들어가 있는 거는 약간 그렇다. 그 부분을 빼주면 일 처리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노동청은 해당 문구가 노동조합법상 노조 아님 통보를 할 수 있는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지난 6월 대법원이 서울·경기·인천이주노조의 손을 들어주는 확정판결을 내린 뒤에도 고용부가 이 조항을 근거로 계속 보완 요구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규약에도 설립목적을 “노동자의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 향상”이라고 밝힐 만큼 해당 조항은 국내 노조에 보편화한 표현이다.

고용부의 한 간부는 “대전청의 조처는 지나친 법해석으로 보인다. 지방청이 노조규약에서 ‘정치’라는 글자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지방청 차원에서 비일비재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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