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발표부터 성사까지
삼성그룹에서 사실상의 지주회사 구실을 할 ‘합병 삼성물산’의 탄생을 두고 합병결의 발표부터 임시주주총회까지 52일간 합병 찬반 진영은 주주간 표 대결을 염두에 두고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또 합병 추진의 합법성 여부를 두고 소송전도 치열하게 진행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지난 5월26일 합병 결의와 함께 주총 일정을 공시하자 두 회사 주가는 나란히 15%가까이 뛰어오르며 축포를 쏘아올렸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0.35대1로 발표됐다. 하지만 공개된 합병 계획은 곧바로 암초를 만났다. 공시 이튿날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공정하다’는 취지로 합병 반대 뜻을 삼성 쪽에 통보한 것이다. 엘리엇은 6월4일 지분 7.12% 보유 사실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아예 공개하고 나섰다. 엘리엇은 닷새 뒤 주총 합병 결의 금지 등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삼성은 합병 시너지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시장 안팎의 논란은 거세졌다. 이건희 회장의 투병이 길어지는 가운데 삼성 미래전략실의 지휘 아래 가속도를 내던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이 시장의 승인을 받는 데 있어 상당한 허점이 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에 삼성물산은 우호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케이씨씨(KCC)에 자사주 5.76%(899만주)를 매각하며 찬성 표 확보에 나섰고, 엘리엇은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추가로 내며 법적 공방을 가열시켰다. 일단 법원은 주총에 앞서 이를 모두 기각했으나, 엘리엇은 법정 공방을 이어갈 태세다.
합병 발표 직후 삼성물산은 삼성 특수관계인과 케이씨씨를 포함해 20%만 찬성 표로 확정한 상황이었고, 엘리엇은 자신의 7.12%를 기반으로 반대 세력 결집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 국내 기관투자자, 외국인주주, 소액주주 등의 표심을 잡기 위해 공방이 이어졌다. 특히 제일모직은 6월30일 긴급 기업설명회(IR)에서 주주친화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대의 의결권 자문기관인 아이에스에스(ISS)와 국민연금의 국내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지난 10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합병을 찬성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합병 무산 부담은 이 시점에서 크게 줄었다.
이후 엘리엇 등 합병 반대진영과 삼성은 소액주주 설득을 놓고 전방위 설득전을 이어갔다. 삼성물산은 주총을 나흘 앞둔 13일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고 주식 위임을 호소했다. 임직원이 소액주주를 집집마다 찾아다니기도 했다. 엘리엇도 폴 싱어 회장의 한국 월드컵 응원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여론에 호의를 구했다.
결국 이런 치열한 공방 끝에 17일 삼성물산 주총은 합병 성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삼성이 앞으로 남겨놓은 지배구조 개편이 시장에서 승인을 받는 일이 더이상 녹록한 과제가 아님은 누구에게나 분명해졌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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