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이 8조5천억원이나 늘어, 월간 증가폭으로 역대 최고치에 이르렀다. 정부가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저금리와 대출 규제완화, 주택거래 증가라는 3박자가 맞물리면서 가계 빚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져 후유증 우려를 키우고 있다.
1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말 가계가 은행에서 빌린 대출 잔액은 579조1천억원으로 한달 사이 8조5천억원 급증했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8년 이후 최대 규모의 증가폭이다. 지난 3월 증가폭인 4조6천억원과 견주면 두 배, 지난해 같은 달 2조1천억원과는 네 배나 된다.
은행 가계대출은 지난해 8월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와 같은 해 8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로, 지난해 4분기에 다달이 6조원대의 증가폭을 이어갔다. 올해 들어서는 연초 주택거래 비수기를 맞아 증가세가 잠시 주춤해진 바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75%로 낮추고 나서 지난달 증가폭이 무려 8조원대로 올라섰다. 지난달 증가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벌써부터 올해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이 지난해 수준(37조3천억원)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18조2천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증가액의 절반에 육박했다.
가계대출 증가는 주택담보대출이 주도했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26조5천억원으로 전달보다 8조원 늘었다. 지난달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였다.
지난달 가계대출 급증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전셋값 급등에 따른 주택 매매 수요 증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은 지난달 서울시 아파트 거래량이 1만3900채로 최근 8년간 4월 평균 거래량인 7200채에 견줘 갑절 가까이 늘었다고 밝혔다. 최근 은행들이 안심전환대출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펼친 것도 가계대출 증가에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여전히 대출 총량 관리를 위한 대책을 펴는 데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변동금리·원금미상환 대출을 고정금리·원금상환 대출로 바꾸는 대출 구조개선 위주로 가계부채 대책을 추진해왔다. 지난 3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맞춰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은 등 관계부처·기관 합동으로 가계부채 관리협의체를 구성했지만, 두 달 넘게 논의가 겉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경기 부양과 가계부채 증가 억제라는 상반된 정책 목표를 두고 입장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폭이 너무 커 우려스럽지만, 대출이 늘어나는 걸 막으면 그나마 다소 살아나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우선 두 가지 정책 목표 중에 어느 쪽을 택할지 결정이 돼야 구체적인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정부의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조처와 저금리 기조로 인해 시중에 늘어난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것이라면, 가계에 미칠 수 있는 위험 부담을 면밀히 고려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수헌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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