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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장맛 찾아 삼천리…새 된장 개발에 12년 걸렸다

등록 2015-05-11 20:09수정 2015-05-12 10:14

이재중 샘표 연구원
서른살에 입사해 마흔두살이 됐다. 12년간 된장만 연구했다. 날마다 된장을 맛보고 분석하고, 새롭게 만들었다. 집 냉장고에도 종류가 다른 된장이 칸칸이 들어 있다는 이재중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 연구원의 얘기를 듣자니 영화 <올드보이>에서 15년간 군만두만 먹은 오대수(최민식 분)가 생각났다. 오랜 기간 연구만 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내놓지 않아 “놀면서 월급 받냐”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들어야 했다는 그를 7일 서울 중구 샘표 본사에서 만났다.

그가 12년의 연구 끝에 만들어낸 ‘백일된장’은 샘표가 15년 만에 내놓은 된장 신제품이다. 단맛을 내는 밀이나 합성첨가물 없이 물, 소금, 콩으로 만들었다. 선조들이 만든 제조방법을 적용한 제품이다.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혼자가 아니었는데 기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제품이 나올 때쯤엔 혼자만 남았다.

선조들의 ‘제대로 된 된장 맛’ 찾아
장맛 좋은 곳이면 어디든 발품
“놀면서 월급받냐” 농담 들으며
합성첨가물 없이 물·소금·콩으로
샘표 15년만에 된장 새제품 성과

“2001년 출시한 ‘숨 쉬는 콩된장’이 고전하던 상황이었어요. ‘숨 쉰다’는 콘셉트가 타사 제품들과는 차별화된 제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비자들 눈이 개발자들 눈보다 더 높았던 거죠.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진짜 장맛을 찾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이재중 샘표 연구원은 콩, 소금, 물로 재료가 똑같은 된장이 집안마다, 지역마다 맛이 다른 이유를 된장 속 미생물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조들이 낸 된장 맛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1000여종의 미생물을 분석했다.
이재중 샘표 연구원은 콩, 소금, 물로 재료가 똑같은 된장이 집안마다, 지역마다 맛이 다른 이유를 된장 속 미생물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조들이 낸 된장 맛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1000여종의 미생물을 분석했다.
된장 명인과 종가, 재래시장 등 장맛이 좋은 곳이면 전국 어디든 찾아갔다. 어떤 집에서는 장 도둑으로 오해를 받아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100여곳을 돌아다니며 지역마다 다른 기호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강원도 사람들은 짙은 검은색을 띠어야 장이 제대로 익었다며 맛을 봤다. 반면 전라도는 밝은색의 장을 좋은 장이라고 여겼다. 강원도·전라도와 달리 색보다 맛과 향으로 장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지역도 있었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른지라 어떤 장맛이 최고였다고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맛이라는 게 있으니 그걸 찾자고 생각했죠. 구수하면서 불쾌한 냄새 없이 산나물향이 나는 된장이 개인적으론 좋았던 것 같아요.”

제대로 된 된장맛 찾기는 전사 차원에서 이뤄졌다. “우리 맛에 길들여지면 안 된다”는 사장의 지시로 샘표 공장 구내식당에서도 자사 된장 대신 수공된장을 먹었다. “제대로”라는 구호 덕분에 타사들이 신제품을 내놓는 수년간 흔들림 없이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이 연구원은 된장의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미생물 연구부터 시작했다. “된장 안엔 미생물이 많아요. 곰팡이는 맛을, 고초균은 향을 결정하는데 대부분 시판 된장은 복합발효 없이 맛을 내는 곰팡이만 이용해 만들어요. 수공된장의 깊은 맛을 못 따라가죠. 그래서 맛과 향을 내는 미생물을 각각 넣은 메주를 쑨 뒤 이 메주를 섞어 된장을 만들었어요. 공정이 그만큼 복잡해졌지만 맛과 향이 확연히 달라졌죠.”

미생물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는 콩알마다 구수한 맛을 만드는 고초균을 심었다. 이른바 ‘콩알메주공법’이다. 콩을 쑤어 사각형의 틀을 잡은 게 메주가 아니라, 오히려 콩알 하나하나가 메주가 되는 셈이다. 메주를 숙성시키는 소금물의 염도가 평형을 이루도록 소금과 물을 섞은 염수도 썼다. 염수는 산도가 높아 기계가 부식되기 쉬워 기존엔 소금과 물을 각기 부어 메주를 담갔다. 하지만 이번 제품부턴 염수를 쓰려고 공장 설비마저 부식에 강한 기계로 싹 바꿨다.

선조들이 사계절 다른 온도에서 장을 숙성시켰듯 온도 변화도 줬다. 일정 온도에서 약 한달 만에 숙성시키는 기존 된장과 달리 100일간 최적의 맛을 내도록 ‘온도리듬 숙성방식’을 택했다.

“남들이 안하는 새로운 걸 한다는 생각에 처음엔 의욕이 넘쳤어요. 그런데 막상 발을 들여놓고 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맛과 향이 다른 미생물을 구분하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제품 하나 개발하는 데 10년 걸렸다고 하면 ‘너 뭐 했니’ ‘니네 회사 너무 편하구나’ 친구들도 농담하구요. 고생 많이 했는데 이런 얘기 들으면 서운하기도 했어요. 이번 제품을 만들면서 축적한 기술이 있으니 다음엔 이번 제품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내놓고 싶어요.”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샘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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