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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시간급제’의 비인간성

등록 2015-04-05 20:16수정 2015-05-18 14:36

김공회의 경제산책
예로부터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비에 준해 결정되었다. 경제학의 전통에서도, 애덤 스미스 이래 고전파에서 그러한 생각엔 대체로 흔들림이 없었다. 근대 산업자본가 계급이 이 생계비를 낮추고자 무던히 애를 썼음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값싼 외국산 곡물에 관세를 붙여 결과적으로 국내 곡가를 높게 유지시킨 곡물법을 폐지하자고 목청을 높였다. ‘값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자는 것과 같다.

임금이 생계비인 것은 당연하다. 임금이란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고용관계에서 발생하지만, 이때 ‘거래’의 대상이 되는 노동력은 노동자의 삶이 원활히 재생산되어야만 제대로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자는 임금 외엔 경제적 수입원이 거의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자본가는 노동력 재생산뿐 아니라 노동자의 삶의 재생산까지 책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아래에서 그가 의도하지 않게 맡게 된 ‘사회적 책임’이다. ‘해고는 살인’인 것도 그래서다.

이렇게 노동자의 삶과 노동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현실을 반영해, 예로부터 임금은 주급이나 일당으로 지급되는 게 보통이었다. 삶이 재생산되는 최소한의 시간단위가 하루 또는 일주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분히 사회문화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하루’의 경우엔 생리적으로 요구되는 최소단위이기도 하다.

물론 하루든 일주일이든, 일정 기간 동안 수행되는 통상적인 노동시간만 주어진다면, 우리는 곧장 ‘시급’을 계산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한 시간’을 단위로 사람을 고용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의 생명활동은 ‘한 시간’을 단위로 순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급은 꽤 오래전부터 계산되기는 했어도, 실제로 그 쓰임은 주어진 시간을 넘는 초과근무에 대한 보수를 평가할 때 등으로 제한되었던 것이다.

자본가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시장과 생산의 여건에 맞춰 노동자를 유연하게 고용할 수 있기를 원할 것이다. 정상적인 임금으로부터 계산된 시급보다 다소 높은 값을 치르더라도. 하지만 이렇게 달성되는 단기적 효율성의 대가는 크다.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이 파괴되기 때문. 1859년 런던 건축업자들이 그간의 전통을 무시하고 이런 시도를 했을 때, 노동자들이 극렬한 저항으로 화답한 것은 당연하다.

그로부터 150년. 오늘 우리는 ‘시급’을 정상적인 임금 형태로 여기며 살고 있다. 실업만큼 무서운 불완전취업이 노동의 일상적 조건이 되고 말았다. 최저임금을 높이자는 요구는 그 필연적 결과다. 하지만 ‘시급’을 정상으로 보는 시각이 교정되지 않는 한 최저임금 인상의 효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해 발 빠른 자본은 고용의 시간단위 세분화로 맞서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휴식시간’이라는 게 없어질지도 모른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최저임금은 이러한 사태를 바로잡는 좋은 수단이다. 최저임금을 최소한의 삶의 재생산이 가능한 시간단위로 공표하되, 그보다 짧게 고용하는 경우에는 일정한 할증료를 붙이면 된다. 자본에 이것은 사회안정성을 해치고 추가적인 효율성을 추구한 것에 대한 비용의 성격을 지닐 것이다. 그들이 즐겨 쓰는 말대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으니까.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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