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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윤리 경영’했다고 상여금 10억?

등록 2015-04-01 20:43수정 2015-04-02 10:25

현장에서
‘숙제 베끼기’는 초등학생만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금융감독원은 3월 말 사업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임원 보수와 산정 근거를 충실히 공시하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수백억에서 수억원대인 임원 보수 수준이 적절한지 주주 등에게 판단 근거를 제공해 기업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주요 대기업들은 이런 취지는 사실상 외면해버렸다. 기업 실적은 물론 임원간 성과도 천차만별인데, 금감원 예시를 눈치껏 베끼다 보니 보수 산정 기준에 대해 천편일률적인 설명들을 쏟아냈다.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은 김창근 이사회 의장에게 지난해 보수로 27억6500만원을 지급했다고 31일 공시했다. 에스케이그룹 전문경영인 가운데 최고액이었다. 직전 인사에서 2선으로 물러난 구자영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전 부회장은 보수 15억1500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에스케이그룹의 전문경영인을 대표하는 두 사람의 보수는 어떻게 산정됐을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올라온 사업보고서는 김 의장이 17억6000만원의 급여와 10억원의 상여를, 구 전 부회장이 9억3000만원의 급여와 5억8000만원의 상여를 받았다고 밝힌다. 회사가 두 사람이 상여를 받게 된 근거로 내세운 내용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2013년 경영실적을 근거로 지난해 상여를 지급했는데, “2013년 매출액 66조393억원과 영업이익 1조4064억원(연결기준)을 고려하였고, 준법경영·윤리경영 문화 확산 노력과 함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기술기반의 신규사업 성장 가속화 등 리더십을 발휘한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사실 2013년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영업실적은 좋지 않았다. 정유 업황이 나쁘기도 했지만, 영업이익은 1조7000억원에서 1조4000억원으로 20% 가까이 줄었고 당기순익도 30% 넘게 줄었다. 2013년에 추진했다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신규사업 가속화에도 2014년 실적조차 더 악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은 급여의 60% 안팎에 이르는 상여를 받았다. 전체 보수는 각각 11억원과 2억원가량이 늘었다. 직원 평균 보수는 외려 약간 줄어든 상황이다.

이 회사가 공개한 정보로 두 사람 보수의 적정성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사업보고서는 영업이익 등 계량 지표와 윤리경영, 리더십 등 비계량 지표를 종합해 급여의 0~200% 안에서 상여를 준다고 밝혔다. 회사 실적은 계량 지표로 보기엔 악화했다. 두 사람이 “준법경영·윤리경영 문화 확산 노력”을 했다는데, 이들이 얼마나 어떤 공헌을 했는지 비계량 지표의 구체적 내역은 알 길이 없다.

정세라 기자
정세라 기자
이런 모호함은 에스케이그룹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구자열 엘에스(LS)그룹 회장은 지난해 지주사인 엘에스에서 22억48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구 회장의 상여금에 대한 사업보고서 설명에도 “준법·윤리경영 정착에 기여한 점, 자회사의 혁신과 발전에 기여한 점, 회사의 발전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한 점 등이 고려됐다”고 한다. 어찌 보면 경영인으로서 성과라기보다는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에 가깝다.

대주주 일가이든 전문경영인이든 직원 급여의 수십배에 이르는 보수를 받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상당하다. 일부에선 이런 논란이 기업 경영인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키워 의욕을 꺾는 부작용만 크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논란을 키우는 건 공개 제도가 아니라, 이처럼 공개 제도 전반에 뻥뻥 뚫린 구멍들이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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