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혼외 연애’의 정치경제학(?)

등록 2015-03-08 20:30수정 2015-05-18 15:01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위헌 결정을 한 2월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옆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위헌 결정을 한 2월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옆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공회의 경제산책

애슐리 매디슨은 기혼자를 위한 세계 최대의 온라인 ‘데이트’ 주선업체다. 작년 이 업체는 자사의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미국에서 자사의 회원수와 실업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내놓은 일이 있다. 결론은 경제위기 직후 실업자가 많이 생긴 지역일수록 회원이 더 많이 늘었다는 것. 실업 때문에 몸과 마음이 허해진 사람들이 ‘새로운’ 상대를 찾아 나섰다는 얘긴데,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한국은?

우리나라에서 위와 같은 상관관계를 따지긴 쉽지 않다. 분명 한국도 2008년 이래 세계 경제위기의 소용돌이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의 경우 실업 부조 제도가 변변치 않아 완전한 실업자로 지내는 경우는 덜해도 일자리가 많이 부실해진 것이 사실이다.

다른 한편, 우리나라에서 간통의 정확한 실상을 알려주는 통계는 없다. 다만 극심한 경제침체에도 주요 등산로 출입구에서 성업 중인 등산용품 판매점이나 에스엔에스를 통한 중년들의 동창 모임 활성화 등으로 대략 추정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곧 우리 국민 중 누구도, 금세기 들어 간통죄 접수 건수의 꾸준한 감소를 보여주는 대검찰청의 자료를 곧장 간통이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진 않으리란 얘기다. 그런데 이 자료도 자세히 보면, 우연찮게도 2008년 이후 감소세가 주춤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도 앞서 언급한 애슐리 매디슨의 조사 결과에서 자유로운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 간통죄가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두고, 보수 일각에서 그들의 본원적 가치인 ‘가족’을 파괴하는 결정이라고 반발한 것에도 일말의 일리는 있는 셈. 이들에게 간통을 형법에 형식적으로나마 명문화해 두는 것은 기혼자들이 점차 성적으로 ‘자유분방’해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선 ‘가족 수호’의 마지막 보루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 파괴는 간통 때문이 아니라 경제위기 자체에 의해 이미 처참하게 진행 중이다. ‘혼외 연애’의 증식이 경제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거니와, 일반적으로 경제위기는 사람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가족관계를 긴장시킨다. 또한 온 가족을 빚더미에 올려놓아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에게 위장이혼을 강요함으로써 한 가정을 일순간에 말 그대로 파괴시키기도 한다.

이쯤 되면, 현 정권은 ‘가족 파괴 정권’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보수세력 일부의 주장처럼 간통을 비범죄화해서가 아니라 경제위기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그런데 경제위기에 따른 가족 파괴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로 전락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기존의 가족을 병들게 하거나 해체함으로써뿐 아니라 새로운 가족의 형성을 방해함으로써도 이루어지고 있다. 요컨대 오늘 우리는 기혼자들 사이에선 연애가 유행하고 청년들 사이에선 연애 포기가 유행하는 기이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상과 같이 다분히 사회구조적 배경을 갖는 사태들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세력이 늘 있었음을 지적해야겠다. 자본주의 초창기에 인구의 급속한 증가 원인을 노동자들의 도덕적 타락에서 찾았던 몇몇 ‘설교자’들처럼 말이다. 경계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대규모 세수결손 없을 것”이라더니…2년 연속 수십조 결손 1.

“대규모 세수결손 없을 것”이라더니…2년 연속 수십조 결손

한국 철강에 ‘트럼프발 관세전쟁’ 회오리 2.

한국 철강에 ‘트럼프발 관세전쟁’ 회오리

세수 예측 실패, 20조원은 집행도 못했다 3.

세수 예측 실패, 20조원은 집행도 못했다

90년 묵은 ‘상호관세’ 꺼낸 트럼프…‘관세 98% 폐지’ 한국은 안심? 4.

90년 묵은 ‘상호관세’ 꺼낸 트럼프…‘관세 98% 폐지’ 한국은 안심?

미국 증시 ‘고평가론’ 확산…M7 비틀대고 관세전쟁 먹구름 5.

미국 증시 ‘고평가론’ 확산…M7 비틀대고 관세전쟁 먹구름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