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회의 경제산책
혁명가이자 경제학자였던 마르크스는 경제학을 ‘근대시민사회의 해부학’이라고 불렀다. 해부학이 인체에 대해 그렇듯, 경제학도 사회의 운동 메커니즘에 관한 가장 본원적인 지식이라는 의미였다.
20세기 이후 경제학에서 물리학적 사고가 크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한 나라의 경제나 사회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잘 구현되었듯이 사람의 인체에 비유되곤 했다. 자연히 경제는 의학적 용어로써 묘사되곤 했으며, 이런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다. 돈을 혈액에 비유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요즘같이 돈은 넘쳐나지만 막상 필요한 곳에 공급되지 않을 때 흔히 ‘돈맥경화’라고 하는데, 이는 별 설명 없이도 누구나 쉽게 뜻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다.
한편 경제학-의학 유비관계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오래된 경제학 문헌에서 화폐는 혈액에 비유되기 이전에 지방에 비유되기도 했다. 인체에서 지방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안 되듯이, 화폐도 경제에서 적정량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지금 시각에서 보면 조금 뜬금없긴 하다. 하지만 혈액이란 것이 ‘순환’한다는 관념이 희미하던 시절에 화폐가 혈액에 비유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혈액순환에 관한 윌리엄 하비의 발견이 출판된 게 1628년이었고, 그것이 세공되고 일반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경제학의 발달에 따라, 또한 의학의 발달에 따라 양자 간의 유비관계도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경제 현상들이 의학용어로 표현된 것일까? 초기 경제학자들 중에 의학 수련을 받은 인물이 많았다는 사실이 하나의 설명이 된다. 철학사에서 영국 경험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 존 로크(1632~1704)는 화폐론을 쓴 경제학자이자 의사였다. 프랑스에서 중농주의 경제사상의 기틀을 다진 프랑수아 케네(1694~1774)도 의사였다. 이들은 무엇보다 의사로서 당대 자국의 유력 정치인을 돌봤다. 로크는 왕정복고 이후 휘그당을 이끌었던 섀프츠베리 백작의 주치의였고, 케네는 루이 15세의 연인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의 주치의였다. 이들은 일의 성격상 유력인들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면서 ‘생리적 몸’뿐 아니라 ‘사회적 몸’, 즉 국민경제에 대한 탐구까지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외에도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의 창시자로 칭송했던 윌리엄 페티(1623~1687)나 <꿀벌의 우화>로 유명한 버나드 맨더빌(1670~1733) 등도 의사-경제학자였다.
19세기 후반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겸직’의 예를 찾기가 어렵다. 학문 분야의 전문화와 직업화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제학의 ‘해부학’으로서의 의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의사’로서의 경제학자의 역량도 세계가 위기에 닥쳤을 때마다 발휘됐다. 이들의 특징은 의학의 발견자들이 그렇듯 관습적인 사고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당대의 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했다는 데 있다. 케인스가 실업이란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임을 밝혀냄으로써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리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 대표적 예다.
비정규직이나 가계부채와 같이 사상 유례없는 문제들로 고통받는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의미의 경제학자 아닐까?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말이다. 새해, 경제학자들의 분발을 기대해본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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