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이 리터당 1300원대인 주유소들이 주변에 몰려 있어요. 서울에서 주유소 (운영)할 땐 ‘단골은 없다’는 생각으로 해야 해요. 휘발유 품질은 어차피 거의 같습니다. 손님한테는 가격이 중요해요.”
19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는 엠에스(MS)주유소의 양교준(42) 사장은 ‘휘발유 1357원, 경유 1217원’ 간판 앞에서 ‘저유가 시대’ 주유소들이 살아남기 위해 ‘1원 전쟁’을 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주유소를 하는 지하철 1·2호선 신도림역 인근엔 휘발유값을 똑같이 1357원으로 써붙인 주유소가 다섯 곳이나 된다. 이날 오후 서울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값이 1560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200원가량 싸다. 서울에 1300원대 주유소가 처음 나타난 것은 12일 아침이었는데, 대표적 초저가 격전지인 신도림역 일대 주유소들도 12~13일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1300원대에 진입했다. 서울 시내 1300원대 주유소는 전체 570여곳 가운데 30여곳으로 늘었다.
주유소 경영만 20년가량을 해온 양 사장은 “신도림역 일대에서 6년간 주유소를 했는데, 서민과 중국 동포가 많이 사는 지역이라 가격에 대단히 민감하다”고 말했다. 지역 특성과 주변 주유소 업주들의 가격경쟁이 수년간 맞물리면서 이 지역 주유소들은 서울 최저가 주유소 타이틀을 돌아가며 달아봤거나 대체로 10위권 안쪽을 지킨다. 입소문이 나면서 목이 좋은 일부 주유소엔 차량들이 줄을 서서 주유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실제 가격경쟁에 완전히 불이 붙은 것은 국제 유가 급락과 함께 가격 변동성이 커진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양 사장의 주유소만 해도 지난해 1월부터 7월 중순까지는 1800원 안팎을 오르내리며 큰 가격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7월18일 1797원으로 내려선 이래 이 주유소 휘발유값은 쭉 미끄럼을 탔다. 그나마 1700원대 가격은 97일간 유지했다면, 1600원대는 48일, 1500원대는 14일, 1400원대는 20일만 유지해 100원씩 떨어지는 하락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게 눈에 보인다. 현재 1300원대 가격은 지난 13일부터 7일째 유지하는 중이다. 양 사장은 “예전엔 일주일치 물량을 미리 확보해뒀다면, 요즘은 하루치만 사들여 재고 손실을 최소화한다”고 말했다.
손님들은 이른바 ‘만땅’ 가격의 변화에 깜짝 놀라고 가는 일이 잦아졌다. 기름값이 1800원 안팎일 때만 해도 쏘나타급 중형 승용차(70ℓ)는 12만원대, 아반떼급 소형 승용차(50ℓ)는 9만원대 주유를 해야 했는데, 지금은 각각 9만원대, 6만원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최대 주유량 기준이라서, 대체로 기름이 남은 채로 주유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체감 가격은 훨씬 낮아진다. 양 사장은 “만땅 해봐야 우리 주유소에선 쏘나타 손님은 8만원대, 아반떼 손님은 5만원대를 쓰고 간다”고 말했다.
눈에 띄게 또 달라진 게 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판매에서 경유와 휘발유 비율이 7 대 3이었다면, 지금은 4 대 6이에요. 경유차는 일하는 차들 아닙니까? 이 차들이 경기가 너무 안 좋아요. 기름값이 싸지면 경유차들은 돈 버는 게 수월해지는데, 제조업·건설업에서 아예 일감이 없다 보니 경유 판매 자체가 줄었습니다.” 양 사장은 “이틀에 한번 오던 8톤 트럭 운송업자 손님이 일주일에 한번 온다”며 “유가는 금융위기 때 가까이 떨어졌는데, 경기진작 효과가 아직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