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경영진이 항공기의 ‘램프 리턴’을 지시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가 있다. 자가용 항공기라면 가능하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5일 새벽 타고 있던 뉴욕발 항공기가 활주로로 향하던 중 방향을 돌려 승무원 사무장을 내리게 한 일에 대해 한 항공전문가는 8일 “항공기가 출발한 뒤에는 대통령도 기장의 권한을 침해할 수 없다. 월권 행위”라고 말했다.

이번 일이 이뤄진 과정을 돌아보면 상식에 어긋나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토교통부의 운항기술기준은 ‘기장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비행기의 기장(PIC)은 비행기의 문이 닫힌 시점부터 탑승중인 모든 승무원, 승객 또는 화물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 항공전문가는 “램프 리턴은 전적으로 기장이 판단할 일이고, 본인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운항 통제 부서의 조언을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 부사장은 승객의 자격으로 탑승해 있었고, 객실본부장을 겸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객실 서비스 관련 지시를 지상에서만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램프 리턴 자체가 요건에 어긋나는 일이었다는 지적도 많다. 램프 리턴은 항공기에 이상이 있을 때와 탑승객에게 이상이 있을 때 가능하다. 탑승객에게 이상이 있는 경우는 위급한 환자가 발생하거나, 항공보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난동 행위를 하는 승객이 있는 경우 등으로 제한된다. 특히 램프 리턴 뒤 사람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우리나라에서는 국정원이 비행기 검사를 다시 실시한다. 위험물질을 기내에 남겨두고 사람만 내리는 만일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기내 서비스 문제로 인한 램프 리턴은 불가능하다고 항공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번 일의 경우 승무원의 서비스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운항이 끝난 뒤 징계를 하거나 재교육을 통해 해결할 일이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쪽은 램프 리턴이 기장과 협의해 이뤄진 일이라고 내비치고 있다. 한 대학 항공학 교수는 “대한항공이 기장과 협의했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되면 기장의 책임 여부를 가리게 된다”며 “기장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는 것 같아, 기장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내 항공사의 한 기장은 “비행기에 탄 최고경영진의 램프 리턴 요청을 받으면 조종사 입장에서 무시하고 비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램프 리턴과 별개로 조 부사장의 기내 행위가 항공보안법을 위반한 것이냐도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항공보안법은 승객이 항공기 안에서 폭언이나 고성방가를 해서는 안 되도록 하고 있다. 기장이 사무장이 아니라 조 부사장을 내리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항공 관련 대학교수는 “비행기에서 고함 친 조씨의 행동은 기내폭력으로 볼 수 있고, 만일 외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항공사 노조 차원에서도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한 직원은 “총수 일가의 전횡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아무 소리 못하며 지냈는데 이런 일까지 터져 자괴감이 느껴진다. 직원들을 대하는 오너의 태도가 상식 밖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직원도 “대한항공 임원이 대통령보다 더 무섭다”며 “기장이든 승무원이든 파리 목숨”이라고 표현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