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비영리단체 ‘블리키스도르프포호프’(Blikkiesdorp4Hope)는 웨스턴케이프의 무허가 거주지역인 블리키스도르프에서 질병에 취약한 아이들을 위해 ‘손씻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접근 방식은 아이들에게 손을 자주 씻으라는 상투적인 캠페인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속이 들여다보이는 비누 속에 넣고 나누어준다. 일명 희망비누(Hope Soap)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얻기 위해 틈만 나면 손을 씻는다. 손씻기가 놀이가 된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화장실을 깨끗이 이용하세요’ 등의 문구 대신 소변기 중앙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소변이 밖으로 튀는 것을 80%나 줄였다고 한다. 화장실 청소의 수고를 덜기 위해 출발한 아이디어다. 어떤 금지 조항이나 인센티브 없이도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이처럼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지만 부드럽게 개입해 돕는 것을 ‘너지’(Nudge)라고 한다. 이를테면 급식을 하는 식당에서 몸에 좋은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게 너지다. 정크푸드를 먹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은 너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이처럼 너지를 새롭게 정의하고 ‘선택 설계’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은 갖가지 편견에 취약한 인간의 실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인간이 체계적으로 틀리는 방식을 연구함으로써, 그들이 최선의 결정을 더 쉽게 내릴 수 있도록 환경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사회혁신가라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힘, 너지를 설계할 수 있는 ‘선택 설계자’로서의 역량과 감각이 필수적인 덕목이 아닐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다수의 사람이 더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개입하는 것이다. 부담이나 경직됨, 대결과 갈등 없이도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키워 기분 좋은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너지에 있지 않을까.
조현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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