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벤처기업 광테크노마그네트(KTM) 사무실 문을 열자, 책상 몇 개만 놓인 넓은 공간이 보기에도 썰렁하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걸까. 조심스레 물으니 최태광(사진) 대표가 입주한지 오래라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평일 낮인데도 사무실엔 최 대표와 달랑 두 명의 직원뿐이다. 미국에 세운 법인에 파견 가있는 직원 한명을 포함해 직원이 대표까지 합해 넷뿐이란다. 이 작은 회사가 최근 나사(NASA)와 기술협약을 맺은 회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광테크노마그네트와 나사가 협약을 맺은 기술은 ‘차세대 워크홀딩(Work-holding) 근원기술’이다. 1초 미만의 순간 전류만 흘려도 수십 톤의 물체를 끌어당길 수 있는 강력한 자석을 만들 수 있는 첨단 기술이다. 해제 후에는 자력이 전혀 남지 않으며 휴대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나사는 이 기술을 우주산업의 핵심 분야인 우주도킹과 다단계 로켓 분리, 우주선 잠금장치 등에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는 우주선 도킹시 우주인들이 직접 운전해 우주선을 맞춘 다음 나사를 조이는 수동방식이었지만, 이 기술을 도입하면 자력을 통해 자동으로 쉽게 도킹을 할 수 있다.
순간전류 흘려 강력자석 만들어
우주 도킹등 활용 첨단기술 주목
기술 개발에 꼬박 7년 걸려
일하던 기업 흔들리자 결국 창업
“한국은 기초분야 연구 척박해
연구과정이 참 외로웠어요”
최 대표가 이 워크홀딩 기술을 개발하는데는 꼬박 7년이 걸렸다. 기술 개발은 모방부터 시작됐다. 유압 기술로 장비를 만드는 한 업체 사장이 이탈리아의 워크홀딩 기술을 우리도 만들어보자며 그를 연구소장으로 앉혔다.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하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자다가도 영감이 떠오를 때면 연구실로 달려가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다. 세계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연구가 잠시 중단될 위기에 놓인 적도 있지만 이내 다른 기업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옮겨간 기업마저 흔들리자 결국 2010년에 회사를 차렸다. 연구만 하고 싶던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최태광 광테크노마그네트 대표가 워크홀딩 기술이 접목된 제품을 시연하고 있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첫 직장이 일본 기업이었어요. 정보통신기술 기초연구에 관심이 없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 기업은 연구를 치밀하게 해 많은 도움이 됐죠. 엘지(LG)전자, 삼성에스디에스(SDS) 연구소 창립멤버로 일하다 미국으로 넘어가 사업체도 잠깐 운영했어요. 그러다 국내와 들어와 이 기술을 연구한거죠. 신기한 건 오랜 세월 연구개발비를 벌려고 국가과제에 직접 지원을 하면 꼭 떨어지는데 다른 업체를 도와주는 형식으로 지원하면 되더라는 거예요.”
이번 워크홀딩 근원기술도 경기도와 미국 텍사스주립대의 기업지원(UT)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빛을 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만든 기술이 무기에 사용되길 원치 않지만 기술 상담차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에 갔을 때다. “한국서 왔다며 인사하니 상대방이 명함도 안 꺼내더라고요. 잠깐 시간을 내 시작한 기술이야기가 2시간 가까이 이어지며 흥미를 보이더니 그제서야 명함을 꺼내 인사하더군요.”
텍사스주립대의 도움으로 나사와 처음 기술 이야기를 한 것도 작년 11월 말께다. 한국의 작은 기업에 별 관심이 없던 나사는 직접 샘플테스트를 해본 뒤에야 활짝 웃어줬다. “기술위원회에서 이 기술에 대해 열광적인 환호를 보였대요. 그런 환호는 좀체 볼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최태광 광테크노마그네트 대표(왼쪽 두번째)와 숀 디. 카터 나사(NASA) 신사업 개발본부장(왼쪽 세번째)이 지난 10월 20일 수원 라마다호텔에서 ‘2014 경기도-UT 지원프로그램’ 수출 협약식을 가졌다.
광테크노마그네트가 ‘워크홀딩’ 기술을 접목해 만든 제품 샘플. 워크홀딩은 1초 미만의 순간전류만 흘러도 수십톤의 물체를 끌어당길 수 있는 강력한 기술이다.
광테크노마그네트와 나사가 맺은 협약은 최종 기술검증 테스트 단계인 에스에이에이(SAA)로 이후 두 기관은 실제 우주선을 대상으로 실증 실험에 들어가게 된다. 워크홀딩 기술은 우주항공산업뿐 아니라 조선, 중공업, 철도, 물류 등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될 수 있어 기대효과가 크다.
“한국은 기초분야 연구가 척박한 환경이다 보니 연구과정이 참 외로웠어요. 신기술 가지고 기초연구를 하는 사람은 미국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죠. 이제는 기술을 안정화시켜 잘 쓰는 게 목표에요. ‘인류사회에 공헌할 최고의 기술을 만들자’가 우리 사훈이죠. 미국처럼 기술을 빌려주는 회사로 가보려고 해요. 이 기술을 잘 쓰고 싶은 국내 좋은 파트너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글 사진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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