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전자 임직원이 고의로 파손했다고 삼성전자가 주장하는 세탁기(사진 왼쪽)는 정상 제품(오른쪽)과 달리 문짝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문짝과 맞닿는 부분은 걸쇠에 부딪쳐 표면이 파여 있다. 삼성전자 제공
국내 가전업체의 맞수인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가 벌이고 있는 ‘세탁기 훼손’ 싸움은 어떻게 끝이 날까.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주형)는 이달 초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직전 발생한 ‘삼성전자 세탁기 훼손 사건’을 배당받아 본격 수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조성진 홈어플라이언스(HA) 부문 사장 등 엘지전자 관계자들이 베를린의 전자제품 매장 두 곳에서 삼성전자 세탁기를 고의로 파손했다는 혐의(업무방해·재물손괴·명예훼손)로 삼성전자가 이들을 고소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4일 두 회사는 휴일도 잊은 채 ‘고의성’ 여부를 놓고 반박에 재반박을 거듭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검찰 조사로 잘잘못을 가리기로 했다. 당시 엘지전자가 훼손된 세탁기 2대를 4대 값에 구매하며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사건이 뒤늦게 확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 “‘품질’ 문제 건드렸다”
오랜 경쟁자 관계인 두 회사가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두 회사는 지난해 ‘냉장고 용량’과 ‘디스플레이 특허’를 놓고 소송전을 벌였고, 에어컨 시장 점유율을 놓고도 설전을 벌이는 등 1968년 삼성전자의 전자산업 진출 이후 빈번히 대립해왔다. 하지만 회사 대 회사의 법적 분쟁이 아니라 상대의 최고위급 임원을 직접 고소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삼성전자가 이런 초강수 대응에 나선 것은, 엘지전자가 사건 ‘해명’을 하면서 “테스트 과정에서 특정 업체(삼성) 제품만 유독 손상됐다”고 ‘품질’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의 발단이 된 삼성전자의 제품은 프리미엄 드럼세탁기 ‘블루 크리스탈 세탁기’다. 지난 6월 국내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며 “현존하는 가장 진화한 최초의 스마트 세탁기”란 보도자료를 냈을 정도로 삼성전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전략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10㎏의 중간급 용량임에도 이 제품을 260만원이란 높은 출고가에 내놨다. “국내 시장에선 ‘대용량·다기능일수록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혁신적인 기능과 디자인, 사용성 면에서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도전이었다”는 게 삼성전자 관계자의 얘기다.
삼성전자에선 이런 전략 제품이 ‘품질 하자가 있는 제품’이란 인식이 생길 경우 브랜드 이미지 손상은 물론 판매에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쪽에선 엘지전자가 두 군데서나 고의적으로 자사의 제품을 훼손해 놓고선 이를 ‘홍보’에 이용하고 있다며 분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에 대해 엘지전자는 “원만하게 해결된 사건을 언론에 흘려 논란을 만든 건 삼성전자였고, 우리는 정당한 해명을 했을 뿐”이라며 발끈하고 있다. 되레 “글로벌 세탁기 1위 업체인 당사에 대한 흠집 내기가 아니냐”며 삼성전자의 ‘노이즈 마케팅’ 가능성도 의심한다.
두 회사의 첨예한 대립은, 양사 모두 2015년 생활가전 부문 세계 1위를 목표로 내걸고 있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끝장을 봐야 끝나는 싸움이 되고 있다.
■ 고의적 훼손 여부 담은 CCTV는…
현재까지 이번 싸움의 초점은 고의성 여부를 밝혀내는 데 맞춰져 있다. 물론 엘지전자 쪽에선 고의성을 부인하고 있다. “해외 현장 방문 시 일상적으로 있는 사용환경 테스트의 일환이었을 뿐”이라며 “특정 회사의 제품을 파손해 그 제품 이미지를 실추시킬 의도가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자사 임원이 직접 갔겠느냐”는 것이다. 엘지전자 관계자는 “실제 사용환경에선 세탁기 도어에 사람이 앉는 상황도 벌어진다”며 “다른 회사 세탁기들과는 달리 유독 특정 회사의 해당 모델은 세탁기 본체와 문짝을 연결하는 부분(힌지)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쪽에선 “원래 하자가 있는 제품일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세탁기 도어가 열린 상태에서 하중 테스트를 수천번 이상 실시해서 일정 정도 이상의 틈새가 벌어지면 출고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용환경 테스트라고 해도 큰 체구의 남성이 하체에 체중을 실어 힘껏 누르는 장면을 보면 누구든 도가 지나쳤다고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도어 강도를 테스트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국내외에 이를 테스트할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제조사별로 저마다 기준을 갖고 있지만, 수치는 공개하지 않는다.
결국 고의성 여부를 가려줄 일차적인 잣대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이다. 삼성전자는 이 증거 영상만 보면 누구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초 ‘엘지전자만 동의하면 녹화된 영상을 공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법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검찰에 증거자료로만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영상 공개와 관련해 엘지전자에서도 “(추가적 논란이) 업체끼리의 이전투구로 비칠 수 있다”며 “검찰 수사로 시비를 가리자”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업계에선 결국은 과거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지면서 사건이 유야무야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업체 등이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대표적 두 기업이 싸우는 모습이 썩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며 “빨리 냉정을 찾고 선의의 기술 경쟁으로 돌아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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