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반 여성인 김아무개씨는 올해 초 서울 동대문시장 쪽에 있는 한 영세 의류업체에서 미싱사로 일하기로 하고 출근을 시작했다. 사장은 “한 달에 2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김씨와 사장은 관례대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출근 12일째 문제가 발생했다. 사장이 “당신은 일을 못 한다”며 김씨한테 퇴직을 요구했다. 김씨는 사장에게 애초 월급 2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일했으니 12일치에 해당하는 임금 70여만원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사장의 말은 달랐다. “월급으로 주겠다고 한 적이 없고 일당 5만원씩이 맞다. 일한 날짜도 12일이 아니라 8일이 맞다”며 40만원을 들이밀었다. 김씨는 억울했으나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탓에 사장과 입씨름만 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서울고용노동청을 찾아 신고했다. 하지만 담당 근로감독관도 양쪽의 주장만 팽팽할 뿐 김씨가 언제부터 며칠이나 출근했는지, 얼마를 받기로 했는지 밝힐 수가 없었다. 서울고용청 근로개선지도1과의 김종률 팀장은 4일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명확히 증빙할 수가 없었다. 결국 주휴수당 미지급과 근로계약서 미작성 및 미교부 등의 혐의로 사업주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취업을 하고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낭패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을 맺을 때 사용자가 임금은 어떤 방식으로 얼마를 줄지, 하루 또는 1주일 노동시간은 몇 시간인지, 휴일과 연차 유급휴가는 어떻게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등을 반드시 문서에 적어 노동자에게 주도록 한다.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이런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전국 2만2245개 사업장을 표본조사해보니 무려 45.8%(1만200곳)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노동자한테 일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유니온은 이날 발표한 <단기 아르바이트 노동법 매뉴얼>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교부받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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