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슬로건하에 강도 높은 공공개혁 정책을 펴고 있다. 공공기관 부채와 방만경영, 낙하산과 민영화 논란 등 주요 쟁점들을 짚어보고 올바른 해법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오건호(사회·이하 오) 우선, 정부가 핵심적인 국정과제로 공공부문 개혁을 강조하는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김남근(이하 김)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는 민영화와 규제완화이며, 이는 곧 공공부문의 축소를 의미한다. 공공임대주택이 줄거나 공공요금이 오르면 국민적 비판과 저항이 우려되니,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과도한 복리후생 등을 내세우는 것뿐이다. 규제완화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영세 상인들의 ‘푸드 트럭’을 예로 들며 마치 경제적 약자를 위한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 몸통은 부동산과 환경, 의료 영리화 등의 규제를 푸는 것이다.
박태주(이하 박) 결국 더 큰 시장, 더 작은 정부를 위한 사전 정비작업이다.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들이 비판적 여론을 활용해 정부의 책임을 공공기관에 전가하고 회피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오 역대 정부의 공공개혁은 비효율성에 초점을 뒀는데, 현 정부는 유난히 부채 문제를 강조한다. 공공기관 부채의 원인과 성격을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채준호(이하 채) 부채의 총량보다는 부채의 성격을 잘 살펴야 한다. 물론 불필요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부채가 늘어난 경우도 있지만, 4대강 사업이나 보금자리주택처럼 정치적·정책적 사업을 추진하다가, 혹은 전기·가스 등 공공서비스 요금을 통제한 탓에 부채가 늘어간 경우가 더 많다. 또 공공기관마다 부채의 원인이 다른데 일률적인 잣대로 부채를 줄이라고 하는 것은 증상이 다른 환자에게 똑같은 처방을 내리는 격이다.
김 개별적인 공공기관마다 심각성을 다르게 봐야 한다. 예컨대 부채가 가장 많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의 경우 주된 부채 요인 중 하나가 공공임대아파트 부문의 적자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세금)으로 해야 할 일을 공사가 대신하다 빚이 쌓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임대아파트를 모두 일반분양하고 더 짓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이런 부채는 부실 경영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사실상 정부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감수해온 것으로, 정부가 출자를 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무조건 부채를 줄이라고 압박하면 공사는 제일 먼저 적자 사업인 공공임대를 줄이는 쪽으로 가게 된다. 이는 공공기관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아파트를 대폭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있지 않나. 정부 스스로 모순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오 실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정부의 정책 사업이나 요금 통제 등 사실상 정부가 책임져야 할 공공기관 부채가 전체 부채의 65%에 이른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공공기관에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무조건 부채를 줄이라고 하니 해당 기관들은 핵심적인 사업이나 자산을 민간에 팔거나 대거 축소하고 있다.
채준호 교수
일률적 잣대로 부채 줄이라는 건
증상 다른 환자에 같은 처방하는것
김남근 집행위원장
외부 전문가 참여 평가위원회 통해
재무적 성과·공익성 함께 평가해야
채 정부가 부채 문제나 방만경영을 바로잡겠다는 것을 명분 삼아 결국에는 민영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민영화 논리는 간단하다. 기존의 공공부문을 쪼개 민간에 넘기고 이들 회사간의 경쟁을 통해 낮은 가격에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건 국외건 이런 민영화 취지에 부합하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 정부는 통신산업 민영화가 성공적 사례라고 주장하지만, 소수 대기업의 독점적 구조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통신요금을 고려한다면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민영화는 공공 독점을 민간 독점으로 전환하는 것인데, 공공적 가치는 훼손되고 민간자본의 수익성 가치만이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결과는 국민들에게 유리할 게 없다.
김 공공서비스는 특히 국민의 생명·안전과 관련된 게 많다. 그런데 많은 공공기관에서 부채와 수익성 등 재무 지표만을 강조하다 보니 안전점검 인원은 줄고 주기는 계속 짧아지고 있다. 독일에서 고속철도 탈선사고로 100명 이상이 희생된 적이 있다. 열차 바퀴 하나에 문제가 있었는데, 안전점검 인원을 계속 줄이다 보니 제때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부채와 비용을 줄이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사업과 투자를 축소하는 것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분별한 민영화와 규제완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지 않은가.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역주행하고 있다. 부채 문제는 정부나 공공기관 내부의 이해만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평가위원회 등을 통해 사업 조정이 이뤄지고, 수익성 등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안전과 공익성 등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평가하는 지표도 마련되어야 한다.
오 정부는 부채 증가의 주된 이유는 방만경영이며, 그 핵심은 과도한 복리후생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방만경영의 원인은 낙하산 인사와 비민주적인 거버넌스(지배구조)라고 진단한다. 올해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기관의 3분의 2가 낙하산 기관장들이 임명된 곳이다.
채 지난해 11월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가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는 발언을 한 뒤 두달 동안,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40명 중 15명, 37.5%가 새누리당 정치인이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레토릭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기 전에 공공기관 인사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것부터 우선되어야 한다.
김 낙하산 인사 문제는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국회에서 걸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사회에 전문성 있는 내부 이사들을 일정 비율 포함하는 것도 방법이다.
채 현재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공공기관 관리와 평가는 지나치게 효율성과 재무적 실적을 중시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공공기관 본래의 목적과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기재부에서 독립시키고 구성 또한 다양한 내외부 인사들로 넓혀야 한다. 지금도 외부 인사가 참여하지만 추천권을 기재부 장관이 독점하고 있고 최종 선정도 대통령이 한다. 관련 조항을 개정해 부문별 참여 인사의 비중을 명확히 규정하고 국회 추천권을 보장하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공운위와 유사한 기구의 이사회 구성에서 정부와 내부, 외부의 비중이 같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개별 이사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강화해 이사회의 책임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오 정통성이 없는 낙하산 기관장들이 내려오면, 이들이 노조 등 내부자와 일종의 ‘거래’를 통해 과도한 복리후생 담합을 묵인하는 구조가 있다. 공공기관 노조 스스로도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 과도한 복리후생은 과감히 회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정부가 단체협상의 구체적인 항목까지 거론하며 폐지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기본적인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박 역대 정부가 공공개혁에 사실상 실패한 이유도 공공부문이 갖는 노사관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다. 공공부문은 노동집약적이어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다. 공공기관을 개혁하려면 구성원들의 동의가 없으면 어렵다. 구성원의 동의가 필수적임에도 역대 정권 모두 노동배제적으로 개혁을 밀어붙였다. 구성원들을 개혁의 주체로 동참시킨 게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취급하니 노조가 반발하고 개혁 정책이 노조와 정부 간 갈등 양상으로 나타난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노동배제적인 정책 추진이 공공개혁 자체의 발목을 잡는 형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김 아무리 정부 정책의 정당성이 있다 해도 방식은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 노조의 단체교섭, 단체행동권은 기본권인데, 행정명령으로 ‘바꾸라, 빼라’ 할 순 없다. 다만 노동조합 역시 공공부문의 특수성을 외면한 채 경제적 실리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 노조는 공공성을 훼손하는 정치적 외압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방지하는 공익적 역할을 해야 한다.
박 공공기관 노조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공공서비스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제 주머니만 늘린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내부의 담합과 도덕적 해이가 있고, 노조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노조는 경제적 실리주의를 뛰어넘어, 공공서비스의 감시자로서의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 제 주머니만 채우려는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로서 기능해야 한다. 사회의 약자 편에 서서 공공서비스의 책임 있는 제공자로서의 신뢰와 위상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채 현재의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은 결국 공공부문의 축소와 공공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공공부문 개혁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지난해 말 철도 파업을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본다.
오 정부가 공공부문 구성원과 노동조합의 밥그릇 챙기기가 공공개혁의 본질이라고 호도해선 안 된다. 우리는 의료·교육·주거 등에서 필수적인 공공서비스가 턱없이 부족한 나라인데, 지금 수준의 공공서비스마저 더 줄어들어선 곤란하지 않나. 공공서비스는 국민 누구나가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제대로 된 공공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으면 권리는 훼손된다.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나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는지, 공공서비스의 이용자인 국민들이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리/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hon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