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재배만 잘 해선 안되죠…잘 팔아야 으뜸농부”

등록 2014-04-15 19:57

신명식씨가 자신이 일하는 유기농 배 밭에서 개량한복을 입고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신명식씨가 자신이 일하는 유기농 배 밭에서 개량한복을 입고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농부다] 유기농 온라인장터 운영 귀농인 신명식씨
대학시절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몸을 바쳤다. 1970년대 말 서슬 퍼렇던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에도 3번이나 갔다 왔다. 공장에서 용접공과 주물공으로 일도 해봤다. 신문사에서 글도 쓰고 편집국장, 이사까지 지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에도 적극 참여했던 이 남자.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가 쉰을 넘긴 나이에 귀촌해 농부로 사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가 농사를 짓고 있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 장흥리로 가는 길은 멀었다. 마을 초입 아스팔트 대로변에는 꽃을 활짝 피운 벚나무 수백그루가 2열 종대로 서 있었다. 마치 병사들을 사열하는 장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이라면 살 만하겠군!” 그런 환상도 잠시. 마을로 들어가니 도무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고 삭막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차 한 대 간신히 들어가는 골목길. 그 집을 찾기 위해 이 집 저 집 기웃거려 봤지만, 사실상 폐가 같은 집만 여러 채 있었다.(실제 70가구 중 절반 정도는 농사짓던 노인들이 요양원 등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비어 있다고 한다.)

“처음 왔는데 주위에서 개조차 안 짖고 너무 적막했어요. 적응이 잘 안 되더라고요. 좀 지나니 밤에 산새들이 우는 소리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건강이 좋아지고 얼굴도 밝아졌어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2010년 1월 귀촌해 이곳에서 유기농 배 농사를 짓고 있는 신명식(57)씨. 자신의 이름을 딴 ‘신명식 농원’을 5년째 운영하고 있는 그는 “시골에서 작은 과수원 하면서 흙 밟고 글이나 쓰면서 살려고 했다”고 귀촌 이유를 털어놨다. “원래 고향은 충남 천안인데, 다년생 작물을 하려고 땅값 싼 데를 찾다 보니 김제까지 내려오게 됐어요.” 이곳에 1600평의 땅을 사서 200그루의 배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배와 배즙은 물론 곶감, 양배추즙을 만들어 파는 농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사회나 역사에 대한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버리고 이제 나를 위해 살자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유기농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기존의 관행농업은 독점과 독선의 농업입니다. 열매 하나 맺으려고 제초제 뿌려 풀 다 죽이고, 살충제 뿌려 익충이든 해충이든 다 죽이고 벌까지 죽입니다. 오로지 배 하나 만들기 위해…. 유기농은 단지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업이 아닙니다. 조화와 상생의 농업이죠.”

쉰살 넘어 도시 생활 청산하고
“이젠 나 위해 살자” 농촌으로
전북 김제 정착해 배 유기농사

‘조화와 상생의 농업’ 가치 불구
제값 못받는 현실 보고 판매 고민
직거래 사이트 개설해 활로 모색
“소비자들은 스토리를 원합니다
농산물에 그걸 담게 돕고 싶어요”

그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원래 흙 한줌에는 수억마리의 균이 있다. 온갖 미생물에서부터 지렁이, 두더지도 있다. 그러나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쓴 땅은 죽은 땅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없다. 처음에는 땅을 만드는, 땅에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퇴비를 넣어주고 해서 흙을 원래 상태로 돌려놔야 한다. 한 7년은 걸린다. 그다음은 풀을 키운다. 일년에 3번 정도만 자른다. 제초제는 절대 안 쓴다. 물론 풀을 키우면 나무의 영양분을 빼앗긴다. 그러나 그보다 얻는 게 더 많다. 나무에 해를 주는 벌레들이 뜨거울 때 풀밭으로 온다. 풀이 없으면 나무로 기어올라간다. 풀을 키우면 해충들의 서식지가 되고 나무에 도움을 준다. 그래도 안 되면 기피제를 써서 해충을 쫓아내야 한다. 그래도 피해 주는 해충이 있으면 유기농이 허용한 천연 약재로 죽인다. 그래도 까치가 날아와 배 같은 열매를 쪼아 먹는다. 벌레도 배를 파 먹는다. 농부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흠집 많이 간 배는 배즙 만들어 팔고, 그보다 더 상한 것은 짜서 배식초를 만들고 그것으로 마늘장아찌를 담그면 된다. 밭에 나는 것은 까치가 쪼아 먹어도 다 쓸모가 있다. 생배를 그냥 파는 것보다 흠집 많은 것이 더 부가가치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배만 팔려고 한다. 약을 뿌려서라도….

신씨는 “유기농의 이런 ‘조화와 상생’ 정신으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대립과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씨는 4년 남짓 농원을 경영하며 살았으나, 정작 농산물 유통에 어려움이 있음을 깨닫고 지난해 마음을 고쳐먹었다. “곳곳이 모순투성이더라고요. 젊어서부터 배우고 행동한 게 있는데 마냥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2개월 전부터 유기농 직거래 사이트 ‘으뜸농부’(www.bestfarmer.co.kr)를 개설해 새 활로를 찾고 있다. “배농사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처음엔 유기농배연구회라는 게 있어 거기 나가서 배웠어요. 회원들이 수십년 동안 실패를 거듭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친절하게 다 공개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초기에는 기술적 문제만 해결하면 다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배를 잘 재배해 놓으면 뭐합니까? 제값도 못 받고 파는데. 그래서 지난해부터 판매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농사는 우리가 오랫동안 지어왔으니, 당신 같은 사람은 유통에 신경써달라’ 그러더군요.”

신씨는 “현재 친환경 농산물의 직거래 비율이 12%인데 몇년 안에 2배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설 자리가 사라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농부가 자신의 농산물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한편, 사업자 등록, 통신판매 등록, 신용카드 개설을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기란 쉽지 않아요.”

그는 30년 전부터 ‘우리옷’을 만들고 보급해온 ‘우리옷 질경이’의 이기연 대표와도 손을 잡았다. “유기농 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중국산 아웃도어를 입고 일하더라고요. 천연 소재로 만든 건강한 일복을 보급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는 개량한복을 입고 일을 한다.

신씨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있다. “저는 글을 써온 사람입니다. 우리 농업이 발전하려면 농업에 문학과 예술이 접목돼야 한다고 봅니다. 소비자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그 스토리도 사고 싶어합니다. 농부가 왜 이렇게 유기농산물을 만들었는가 하고 말이죠. 농산물을 대충 포장해서 보내면 안 돼요. 농산물이 갖고 있는 의미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농민들한테 그런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는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조사입니다. 이웃, 친구, 직장동료 등한테 ‘내가 무슨 농사 지으면 네가 사 먹을래?’ 그렇게 시장조사 해서 판매망 만들어놓고 귀농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귀농한 사람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지어 시작하지만 나중엔 팔 수가 없게 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조그만 텃밭에 만들어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김제/글·사진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삼성 반도체 1분기 ‘적자전환’ 전망…연간 영업익 ‘반토막’ 가능성 1.

삼성 반도체 1분기 ‘적자전환’ 전망…연간 영업익 ‘반토막’ 가능성

또 사이트 터질라…‘힐스테이트 세종 리버파크’ 청약 일정 변경 2.

또 사이트 터질라…‘힐스테이트 세종 리버파크’ 청약 일정 변경

“총수 위한 삼성 합병 증거들 전혀 활용 안 돼…사실상 면죄부” 3.

“총수 위한 삼성 합병 증거들 전혀 활용 안 돼…사실상 면죄부”

슬금슬금 엔화 강세…20개월 만에 100엔당 950원 넘어 4.

슬금슬금 엔화 강세…20개월 만에 100엔당 950원 넘어

국내 투자자, 해외주식 거래 폭증…증권사 순위도 흔들 5.

국내 투자자, 해외주식 거래 폭증…증권사 순위도 흔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