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8일 개막하는 ‘제13차 보아오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뉴스1
삼성SDI와 합병한 제일모직
엔지니어링 최대주주·석화 대주주
두 계열사 지분 움직임에
이재용·이부진 후계 구도 달라져
엔지니어링 최대주주·석화 대주주
두 계열사 지분 움직임에
이재용·이부진 후계 구도 달라져
“이번 합병은 3세 승계와는 무관하다. 삼성이 경쟁력 있는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에 따라 계열사들의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일 뿐이다.”
삼성에스디아이(SDI)와 제일모직의 합병 발표 다음날인 1일, 삼성그룹 관계자가 한 말이다. 지난해 말 제일모직의 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긴 데 이어 삼성에버랜드의 급식 사업과 건물관리 사업을 떼어냄으로써, 삼성에버랜드의 사업구조를 레저·패션으로 단순화했다면,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전자부문의 ‘소재(제일모직)-부품(삼성에스디아이)-완제품(삼성전자)’의 수직 계열화를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계열사들의 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상호보완성을 높이는 방향의 사업 구조 개편이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와 증권가에선 이미 건설·화학 부문 등이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건설사업의 경우,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 건설사업부문, 삼성에버랜드 등 4곳으로 나뉘어 진행돼온 만큼 성격에 맞게 ‘헤쳐모여식’ 정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특히 삼성물산이 지난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매입해 2대 주주(7.18%)로 올라선 이후, 삼성물산과 엔지니어링의 합병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삼성토탈과 삼성정밀화학, 삼성종합화학, 삼성석유화학, 삼성비피(BP)화학 등으로 분산돼 있는 화학 계열사들의 합병설도 나온다. 여러 곳으로 분산된데다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게 이유다.
삼성그룹은 이번 합병이 3세 승계 구도 형성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고 선을 긋지만, 적어도 승계 구도를 그리는 큰 그림을 엿볼 단초가 될 수는 있을 듯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합병을 통해 제일모직이 삼성전자의 우산 밑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제일모직이 다음 구조 개편 대상으로 꼽히는 삼성엔지니어링(건설)의 최대 주주(13.1%)이자 삼성석유화학(화학)의 대주주(21.4%)이기 때문이다. 사업구조 개편 속 제일모직의 지분 이동 방향에 따라 승계 방정식이 달리 쓰여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선, 제일모직이 갖고 있는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은 삼성물산 쪽으로 이동할 거란 게 업계의 대체적 관측이다. 제일모직을 합병한 삼성에스디아이가 지난해 삼성엔지니어링의 지분 전량(5.1%)을 삼성물산에 매각한 전례가 판단의 근거다. 이 경우,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건설부문의 지배구조 최상위에 설 수 있게 된다. 삼성물산을 잡는 사람이 건설도 장악하게 된다는 얘기다.
제일모직이 갖고 있는 삼성석유화학 지분도 승계 구도의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 삼성석유화학의 최대 주주는 이부진 사장(33.2%)이다. 그 나머지를 삼성물산(27.3%)과 제일모직(21.4%), 삼성전자(13%)가 나눠 갖고 있다. 이번 합병으로 제일모직이 삼성전자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됨에 따라, 제일모직과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석유화학 지분 합계는 34.4%로 이부진 사장의 지분보다 많아졌다. 일단, 삼성전자의 지분 0.57%를 보유한 이재용 부회장이 지닌 삼성석유화학에 대한 영향력이 이부진 사장보다 더 커진 것이다.
일각에 떠도는 ‘얘기’처럼 이부진 사장이 건설·화학을 상속받기 위해선, 삼성물산을 장악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2대 주주(4.06%)라는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각별한 중요성을 띤다. 경쟁 구도에 선 남매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후계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