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영역이라 할지라도 ‘먹고사니즘’의 무게는 만만치가 않다. 사회적 경제를 추구하면서 구성원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관리한다거나, 승자가 독식하는 경쟁체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 분야의 기업가들은 고민한다.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보람을 느끼고, 재능을 발휘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할 수는 없을까?
<인간의 이름으로 다시 쓰는 경영학>에서 최동석 박사는 현대 사회에서 조직 구성원 대부분이 ‘성과 달성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 경쟁에서 낙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명령과 통제의 위계질서에서 빚어지는 관계의 단절과 소외’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주말을 기다리면서 감내하며 사는 것이다.
기업가·활동가·연구자·전문가한테 물어보니
그렇다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의 삶은 어떠할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몇몇은 일과 생활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퇴근이라는 말은 새삼스럽다. 삶 전체가 일과 일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의 네트워크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열정을 들끓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조직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고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2월부터 3월 초에 걸쳐 사회적 경제 영역의 기업가와 활동가, 연구자 8명을 만나 인터뷰했고, 별도로 인재육성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사회적 경제에서 사람이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자발성’과 ‘자율성’을 꼽았다. 충남발전연구원 김종수 책임연구원은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동기부여가 핵심”이라며, “집체교육보다는 학습동아리 등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단법인 동천의 양동수 변호사는 “가치지향적인 조직에선 재능이 스스로 발현될 수 있는 상호작용 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께일하는세상 이철종 대표는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본질적”이라며, “그런 자발성을 가진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둘째로 중요한 요인으로는 ‘사람에 대한 조직의 철학’이 꼽혔다. 트래블러스맵의 변형석 대표는 “직원이 성장한 만큼, 딱 그만큼 조직이 성장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는 변 대표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확신은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예를 들어 자기 계발을 위한 교육 훈련 비용은 회사가 지급하고, 근무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3년 근속자에게는 두 달 동안 안식월을 부여하는데 안식월에도 평소 급여의 50%를 지급한다. 이 회사는 또 대표를 포함해 전 직원이 같은 급여를 받는 시스템을 한동안 유지해왔다. 함께 노력하고 키우자는 취지에서다.
셋째 핵심 요소로는 ‘사명 등 공유가치에 대한 확신’이 손꼽혔다. 한국사회투자 김홍길 팀장은 “초기 조직을 자리잡게 하는 과정엔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표를 포함한 전 직원이 함께 모여 워크숍을 하고, 사회적 금융 주간을 마련해 몇 가지 주제를 놓고 장기간 마라톤회의를 진행하며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율하는 작업을 했다”고 그는 밝혔다.
트래블러스맵 직원들의 워크숍은 여행 길잡이를 위한 직접체험을 겸하기도 한다. 1박2일 워크숍 중 전남 증도 슬로시티 태평염전에서 염전체험을 하는 장면. 트래블러스맵 제공
교육보다 마음가짐 따라 잠재력 달라져
아이쿱생협 유광진 교육팀장 역시 ‘공유가치와 사명, 조직 문화’를 우선순위로 꼽았다. 아이쿱생협은 이미 전체 예산의 10% 정도를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신입직원 교육으로 현장실습교육(OJT) 3개월과 멘토링을 포함해 1년을 할애하는 등 교육을 강조하고 있었다. 인재육성 전문가 좌담회에서도 역시 “구성원들이 사회적 가치와 사명을 통해 자긍심을 갖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며 “형식화된 교육보다 지도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성장의 잠재력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피브릿지 송인창 이사장은 ‘성장단계에 따라 다른 것 같다’며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창업 초창기엔 매일매일 갈등하는 사람들을 붙들고 ‘미래상’(비전)을 공유하는 일이 중요하다. “술값이 많이 드는 일이다. 지도자들이 월급을 더 많이 가져간다든지, 더 좋은 차를 탄다든지 하는 것을 포기하고 공감대를 이뤄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네가지 단계별 성장프로그램 있어야
성장기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직무교육이 필요한 시기다. “요즘엔 외부에 유익한 학습모임이 정말 많다. 다른 사람을 거울삼아 스스로 부족함을 깨달아야 성장 욕구가 생긴다. 교육은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송 이사장의 말이다.
셋째 단계로 들어서면 고성과를 내기 위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특징을 이해하고 모델링하면서 교육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송 이사장은 “모든 걸 다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저마다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마련하고, 이러한 재능을 집중적으로 계발하도록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째 단계는 사회적 경제와 연관된 가치와 철학, 신념과 확신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그는 “자기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나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는 일이다. 기존의 경쟁이나 돈 중심의 사고에서 협동이나 또다른 자신만의 삶의 가치로 변화시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경제 조직이 교육을 시행할 때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이수연 연구원은 “개별적인 사회적 경제 조직이 당장 인재육성 역량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사회적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공의 재산을 마련한다는 견지에서 함께 투자를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길게 볼 때는 개별조직들도 자체적인 교육 역량을 키워나가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해피브릿지 송인창 이사장은 “사회적 경제 영역의 구성원들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연중 가동되는 연수원과 소프트웨어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공부해서 남 주냐?’가 아니라 ‘공부해서 남 주자’고 말한다.
내 공부가 나의 마음을 바로잡고 있는지, 나의 공부가 공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내 공부가 과연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실천력을 내포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다. 사회적 경제 영역은 공부 역시 사회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소수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나누는 공부는 우리로서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사회적 경제, 공부해서 남 주자.
조현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gobog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