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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편집국에서] 낙하산… / 김영배

등록 2014-03-02 18:44

김영배 경제부장
김영배 경제부장
낙하산을 처음 사용한 이는 프랑스인 앙드레자크 가르느랭으로, 1802년 1000m 높이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세상의 모든 지식>).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낙하산 개념을 고안해 그림으로 남긴 지 500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낙하산의 역사는 이렇게 기록으로 더듬어지지만 국내에서 회자되는 ‘낙하산 인사’라는 말의 뿌리는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아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넷 따위에 떠도는 이야기들에서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을 추려보면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의 군인 중용에서 비롯됐다는 정도이다. 낙하산이 군 장비이니, 핵심을 잘 찌른 조어였던 셈이다.

군사독재 정권을 지나 민주화를 이룬 뒤에도 낙하산 인사를 둘러싼 시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도 낙하산 인사는 논란을 일으킨 것으로 기억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코드 인사’ 시비도 그런 맥락에 닿아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눈에 띄었던 것은 대개 기관장·감사에 머물던 낙하산의 침투 깊이가 이사 수준으로까지 내려왔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어지는 낙하산 인사가 그 이전 정부 때보다 명확히 많다는 식으로 계량화할 지표를 나는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특징은 있다. 기관장, 감사, 이사에서 ‘사외이사’로까지 투입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이다. 2월에 한국전력공사 사외이사로 선임된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 이강희 전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 의원,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한 예다. 사외이사 선임까지 낙하산 논란으로 이어진 건 이례적이다.

이전 정권 때보다 매우 대담해 보인다는 것도 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겠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방지안을 대통령에 보고해 발표하는 날에도 당당하게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낸 일은 단연 압권이었다. 여기에 대한 비판이 이곳저곳에서 제기됐음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추가적인 낙하는 계속되고 있다. 어쨌거나 대통령의 지지율은 굳건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인 것일까?

낙하산 인사가 일정 수준은 불가피했을 법하다. 정권 창출의 사유가 쿠데타에서 선거로 바뀌었을 뿐, 권력을 잡는 과정에 가담했으면서도 잉여로 남은 인력의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전 정부 때도 다 하지 않았느냐는 항변을 겹치면 면죄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공공기관은 국민의 공공재라거나, 낙하산을 집어넣더라도 어느 정도 품격과 아귀는 좀 맞춰야 하지 않느냐는 최소 당위론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말하는 쪽의 입만 아프고 듣는 사람의 귀만 심란하다. 이제 좀 다른 얘기를 꺼내들어야 할 것 같다. 공공기관 고위직 인선의 출발 지점인 임원추천위원회의 면면을 공개하는 일이다. 지금은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누가 엉터리 인사를 뽑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공기업·준정부기관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에 근거해 정부 쪽은 추천위의 면면 및 운영 내용을 모두 숨기고 있다. 인선 이후에도 추천위의 명단은 알 수 없다. 책임 있는 인선이 이뤄지도록 압박하기 어려운 이 구조를 바꿔내는 일로 엉터리 낙하산을 막는 일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본격적인 의미의 낙하산 출현 이전 우산 모양의 기구를 이용해 하늘을 날아 보려 했던 시도의 뿌리는 훨씬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역사서 <사기>에는 요순시대의 순임금이 젊은 시절 삿갓 두 개를 이용해 지붕에서 뛰어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하늘을 날고 싶어한 인간의 꿈에서 비롯된 낙하산이 군내 나는 용어로 이어진 현실에 정치 달인 순임금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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