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현대제철 기술연구소 가보니
신형 제네시스에 4배 늘려 사용
충돌에 강하면서 주행감 향상
“기존 방식보다 무게 17㎏ 줄여”
신형 제네시스에 4배 늘려 사용
충돌에 강하면서 주행감 향상
“기존 방식보다 무게 17㎏ 줄여”
지난 14일,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기술연구소 본관을 들어서자 하얀 뼈대를 드러낸 차체(BIW) 전시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구형 제네시스(BH)’였다. 연강부터 초고장력 강판까지, 차체의 각 부위에 어떤 소재가 얼마나 사용됐는지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차체 앞에 놓여있었다. “이제 곧 신형 제네시스(DH) 차체로 교체될 거에요.” 고객기술개발팀의 이동수 과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자리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제철의 선진기술이 가장 집약된 차”에게 주어지는 곳이다. 2007년 연구소가 생긴 뒤 첫 주인공은 ‘엔에프(NF) 쏘나타’였고, 신형 제네시스가 3번째로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신형 제네시스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 건, 현대제철 연구소가 2년 여에 걸쳐 개발하고 생산해낸 ‘초고장력 강판’(AHSS·강도 60㎏급 이상)이 차량 소재로 사용된 덕분이다. 초고장력 강판은 1㎟ 굵기 철사에 60㎏을 매달아도 끊어지지 않는 강도를 지녔다는 의미다. 이 초고장력 강판을 기존(13.8%)보다 4배 가량 많은 51.5%를 사용하면서 신형 제네시스는 충돌에는 더 강하고, 주행감은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과장은 “신형 제네시스에 사용된 초고장력 강판 100%가 현대제철이 생산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개발한 초고장력 강판 덕분에 기존 방식대로 하면 20㎏가 더 늘었어야 할 차체 무게를 오히려 17㎏나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본관을 포함해 4개의 연구동으로 구성된 이곳 기술연구소에서는 이날도 “더 좋은 자동차를 위한 더 좋은 철”을 개발해내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성호 응용기술개발 부장은 “지난해까지 현재 자동차에 쓰이는 철강 소재 100%를 현대제철에서 개발한다는 목표를 달성했다면, 신형 제네시스 출시를 시작으로 올해부터는 초고장력 강판 개발·생산 등 ‘철강 소재의 경량화’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초고장력 강판 등 소재 경량화 개발의 핵심은 간단하다. ‘더 얇고 가볍게, 더 강하게, 더 부드럽게.’ 이 조건을 고루 충족시킬 때 비로소 연비 좋고 튼튼한 차를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 부장은 “가볍고 얇게 만들면 충돌 성능이 떨어지고, 강도를 높이면 진동·소음이 심해질 뿐만 아니라 연신율(재료가 늘어나는 비율)도 낮아진다. 또 아무리 강판을 잘 만들낸다고 해도 차량 설계와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의 전 실험 과정은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는 ‘황금비’를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강도를 높이기 위해 탄소(C)나 망간(Mn), 인(P) 등의 합금 비율을 어떻게 할지, 쇳물을 끓이는 온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냉각 속도에 따라 제품의 물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는 실험이 매일매일 진행된다. 이렇게 생산된 강판을 갖고 강도와 내구성, 연신율 실험이 거듭될 뿐만 아니라, 설계된 차량에 강판을 적용하는 시뮬레이션 작업도 이뤄진다.
연구소에선 60㎏급 이상 초고장력 강판을 생산한 데 이어 올해는 ‘나노강’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초고장력 강판의 입자를 더 미세하게 제어해 연신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7~10% 수준인 100㎏급 초고장력 강판의 연신율을 15%까지 끌어올릴 생각이다. 이 과장은 “이 정도만 되도 차량의 복잡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철’을 이용한 차량 소재 경량화에 집중하는 건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초고장력 강판 등을 통한 경량화 효과가 10~20% 수준으로 크지 않아, 아우디와 베엠베(BMW) 등 독일 고급차 업체들은 알루미늄이나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 등 신소재 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차가 계열사인 현대제철을 고려해 무리하게 철강 소재에 집중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 과장은 이에 대해 “솔직히 완전히 부인할 수 있겠냐”면서도 “지금으로선 여전히 철이 최적의 소재인 것도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알루미늄과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이 각각 철에 비해 3배, 20배나 비싸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다른 소재보다 철강 소재의 비중을 51%(신형 제네시스의 예)까지 높이는 게 훨씬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아우디 같은 업체들도 판매 대수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일부 고가 차량에만 신소재를 사용하고 있다”며 “새 소재를 찾아가는 과도기적 시점인 지금, 해외 곳곳에서 현지 생산을 늘려가고 있는 양산차 업체인 현대차가 안정적인 소재 공급을 위해 철강 소재 개발에 집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당진/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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