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한국 참여에 시큰둥
정부선 ‘잃을 것 없다’ 판단
전문가 “안일한 태도” 비판
정부선 ‘잃을 것 없다’ 판단
전문가 “안일한 태도” 비판
마이크 프로먼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임에 따라 우리나라 정부의 협상 전략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9일 티피피 참여를 발표하면서 “일본이 협상에 참여한 것이 고려 요인이 됐다. 일본 정부의 환영을 기다리고 있다”며, 협상 참여에 일본 정부의 태도가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정작 티피피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다소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부는 프로먼 대표의 발언이, 애초 연내 타결을 목표로 한 티피피 협상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현재 쌀 시장 개방과 지적재산권 보호 범위를 놓고 미국과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이 이견을 보이고 있어, 티피피의 협상의 연내 타결은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티피피에서 다루는 안건 가운데 40% 정도가 합의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연말에는 잠정 합의를 선언하고, 완전 타결은 내년 1분기로 미룰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참여는 티피피 협상의 진도가 더욱 늦춰지는 요인이 될 게 뻔하기에 협상을 주도하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을 마냥 환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일본도 2011년 11월 ‘관심표명’을 선언한 뒤 2013년 3월 공식 참가선언을 하기까지 1년4개월이나 걸렸다. 미국, 호주 등과의 예비 양자 협상에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이미 체결한데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이 티피피 협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참여가 절박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티피피 협상 타결이 애초 목표보다 늦어질 것이 확실해, 지금 협상에 참여해도 크게 잃을 게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관심표명’ 단계 이후 기존 참여국을 상대로 갖게 될 양자 협상에서 충분히 국익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예비협상 단계에서 참여 조건이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점을 연일 강조함으로써, 양자 협상에서 우리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태도가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정부의 티피피 협상 참여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기존 참여국이 합의한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라’는 메시지다. 한국이 새롭게 요구할 게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티피피 협상에 참여하려면 비싼 참가비를 내라는 요구다. 대표적인 게 쌀 시장 개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에프티에이 협상과 마찬가지로 티피피에서도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대신 의무수입량을 할당받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양허안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티피피에서 미국과 호주의 쌀 시장 개방 공세를 막아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쌀 시장 보호를 공언한 일본 정부도 최근 관세 대신 보조금을 삭감하는 대안을 티피피에 제안했으나, 호주 등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일본 언론들은 쌀 관세율 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의 쌀 쿼터 협정이 2014년 끝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쌀 시장 개방 공세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티피피 협상에서 쌀 시장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내주는 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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