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철도노조 강력 반발
민주, 국회 비준동의안 제출 요구
정부 “시행령 개정 불과” 반복
민주, 국회 비준동의안 제출 요구
정부 “시행령 개정 불과” 반복
정부가 기습처리한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의정서 개정안을 둘러싼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 보고 없는 국무회의 의결은 법 위반”이라는 국회 비준을 요구했고, 철도노조는 “철도 시장의 민영화 수순”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 관련기사: 정부 ‘외국 자본에 철도시장 개방’ 기습 의결)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13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국회의 동의와 보고절차를 거쳐야 할 사안까지 슬그머니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려 하고 있다”며 “정부조달협정은 철도민영화를 허용해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이므로,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전 원내대표는 이어서 “통상절차법 제13조 3항에서 정부에서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없다고 해석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국회는 서명된 조약이 통상조약에 해당된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에 비준동의안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며 “따라서 민주당은 해당 상임위에서 1차적으로 정부에게 국회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기습 국무회의 통과가 통상조약법에 규정된 영향평가와 경제성평가를 보고 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률 위반이라고 보고 있다. 통상조약법은 국내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상 조약의 제·개정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경제성 판단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 제 60조 1항도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야권은 의정서 개정안이 도시철도와 일반철도의 시설 건설·관리·감독 등을 개방한다는 포괄적인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철도민영화의 흐름과 발맞춰 외국자본이 국내 철도시장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요금 인상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헌법 규정에 따라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회 비준 사안은 아니라는 설명을 되풀이 하고 있다. 1994년 세계무역기구 가입 당시 작성된 의정서는 국내법에 없는 강제력을 지녔기 때문에 국회 비준동의 사안이었지만, 일반철도·도시철도를 정부조달협정에 대상에 추가하는 것은 시행령 개정 사안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해명자료를 내어, “개방된 철도기관 범위에 도시철도 7개 기관이 추가될 뿐, 국내 법률을 변경·수정 또는 제·개정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동의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정부조달협정 대상이 된 내용은 열차 관련 서비스업으로 한정된 반면, 이번에는 철도 시설의 건설·유지·보수·감독·관리 등이 포괄되는 내용이다.
정부조달협정 의정서 개정안은 철도 민영화와 연관돼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관계자는 “비행기와 자동차 위주로 발전해온 미국 물류 산업과 달리 유럽은 철도산업이 매우 강하다”며 “그들이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으로 국내 철도시장에 밀고 들어온다면 공기업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국민들의 부담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철도노조는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이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민영화 국면에도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고속철도 분야는 정부조달협정 개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역진 조항 등의 영향으로 외국 자본에 한 번 개방된 문호는 다시 좁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철도노조와 지하철노조는 이날 함께 성명을 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프랑스 재계 인사들과 간담회 도중 ‘도시철도 등 정부 공공조달시장을 개방하겠다’고 한 발언이 준비된 발언이었음이 확인됐다”며 “수서발 케이티엑스는 물론 도시철도 역시 민영화에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정부조달은 ‘관세무역 일반협정’(가트·GATT)의 예외사항으로 무역 자유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분야다. 이에 ‘가트 체제’를 확대 계승한 세계무역기구는 정부조달협정 회원국을 대상으로만 정부조달 영역에서도 자유무역이 실시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개정한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은 자유무역의 예외사항이었던 일반철도와 도시철도, 철도시설공단 업무 등을 풀어, 외국 자본이 자유롭게 조달계약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각국의 조달시장 개방 정도는 개별 의정서에 따라 다르게 규정돼 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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