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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힘든 일도 나눌 수 있으니 낙원이 따로 없네요”

등록 2013-10-29 19:53수정 2013-10-29 22:22

9년차 귀농 부부 임재경·김영임씨가 하우스에서 고추를 따다가 활짝 미소를 짓고 있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쉼없이 수다를 주고받는 부부의 모습이 맑고 행복해보였다.
9년차 귀농 부부 임재경·김영임씨가 하우스에서 고추를 따다가 활짝 미소를 짓고 있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쉼없이 수다를 주고받는 부부의 모습이 맑고 행복해보였다.
[나는 농부다] 지리산 중기마을 귀농가족 임재경씨네
임재경(50)·김영임(49)씨 부부는 2005년에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의 산내면 중기마을로 귀농했다. 첫딸 고운별(24)씨가 실상사작은학교에 다닌 게 인연이었다. “산내면에 자리잡기 한해 전에 경북 문경으로 귀농을 시도했어요. 실패했지요. 텃세가 너무 심했거든요. 여기는 귀농자가 많아 꺼렸는데, 막상 살아보니까 너무 좋아요.” 대학에서 전통의상을 전공한 첫딸 고운별씨는 지금 실상사작은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방과후 수업으로 아이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친다. 둘째딸 고운달(19)씨는 짬짬이 일해 번 돈으로 올해 6월 영국의 공동체마을을 찾아 한달 동안 지내기도 했다. 지금은 부산에서 컴퓨터를 배우면서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 김씨는 “이웃이 한없이 고맙다”고 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아이들을 만나면 이름을 부르고 ‘요즘 뭐 하니’ ‘어떻게 지내니’ 물어줘요. 그런 게 아이들한테 큰 에너지가 되는 것 같아요. 우리 마을에는 나름의 문화가 있어요. 공동체가 살아 있지요. 도시에서 살았거나 귀농자 없는 시골에서 살았더라면,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 컸을까요? 아닐 것 같아요. 산내면에 살아서 참 감사하지요.”

남편 임씨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지만, 손재주가 많고 누구보다 부지런하다.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는 용접공으로 일하다가 곁눈으로 정화조 만드는 기계 설계를 배웠다. 지금도 수시로 일감을 받아 설계도면을 그린다. “도시에서 일할 때 지독한 어지럼증이 있었어요. 직업병이었죠. 그래서 공기좋은 시골을 찾았는데,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낫더라고요.” 임씨는 물을 뜨겁게 데워 난방하는 아궁이 보일러도 손수 개발했다. “장작으로 불을 때면 1주일이 지나도 실내온도 15도를 유지해요. 귀농하던 해 저희 집을 지으면서 개발했어요.” 임씨가 아궁이 보일러로 지어준 집만도 여러 채이다.

“우리 마을은 귀농자가 많아서 더불어 살기가 참 좋아요.술 같이 먹어줄 사람이 있고, 독거노인 집수리 봉사도 같이 해요. 모임 만들어 축구 하고, 탁구와 배드민턴 치고, 자전거 타니, 외롭지 않아요. 힘든 일도 나눌 수 있으니, 우리한테는 낙원이 따로 없어요.” 아내 김씨가 남편 자랑을 보탰다. “설계일 하고, 집 짓고 막노동하고, 농사까지 억척같이 지어요. 그러니 우리가 빚 안 지고 땅 장만해서, 이렇게 살지요. 술 잘 마시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자기 철학도 있어요.”

순수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고추를 하우스에서 말리는 모습.
순수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고추를 하우스에서 말리는 모습.

용접공 일하다 얻은 어지럼증
시골 살다보니 저절로 싹~
집 지으며 아궁이 보일러도 개발
올해부턴 농사일에만 전념
유기농 상추·고추 재배 시작
정착 8년만에 이젠 귀농 안내자로

부부는 올해부터 산내면에서의 새로운 삶에 도전했다. 남편이 하던 여러 일을 접고, 전업농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가진 땅은 밭 2600여㎡, 논 2300여㎡. 올봄에 인접한 인월면의 30년 묵은 밭 6600㎡를 평당 2만원의 헐값에 또 장만했다. 우선 2600여㎡의 밭에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를 세워, 순수 유기농으로 상추와 고추 농사를 시작했다.

“우리 정도면 이곳 귀농자 중에 대지주예요.(웃음) 운 좋게도 싼값에 논밭을 사들일 수 있었어요. 그동안 열심히 일한 덕에 빚도 거의 없어요. 이제는 농사만으로 자립해보려고 합니다. 완전한 농사꾼이 되기로 했지요. 그래서 돈벌이가 되는 하우스를 시작했는데, 고생문이 열렸습니다.” 아내 김씨는 “옛날 처녀 시절 공장에서 철야근무를 하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여름철에는 해 떨어질 무렵부터 자정께까지 상추를 따다가, 다시 새벽에 일어나 동틀 때까지 일을 했다. 하우스 한편에서 쪽잠을 자는 날이 더 많았다.

지금은 한 상자에 3만3천원씩, 매일 8~15상자의 상추를 원예농협에 출하한다. 이 정도 값이면 인건비 빼고도 농사지을 만하다. 하지만 상추값은 시시때때로 출렁거려, 7천원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요즘 부부는 고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유기질 거름 주고 값비싼 친환경 자재 써서, 정말 정성껏 농사지었거든요. 우리 고추 잘 자란 것 보세요. 그런데 값이 떨어져 고추를 팔 수가 없네요. 주위 사람들 소개로 겨우 고춧가루 200근을 팔았는데, 아직도 집에 200근이 쌓여 있어요.”

그래도 아내는 남편과 함께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여름 내내 깜깜한 밤 산속 하우스에서 혼자 상추를 땄어요. 혼자 하기에 너무 힘든 일이예요. 완전 외로움이죠. 이제 남편이 바깥일을 모두 정리하고 있어요. 머지않아 남편과 매일 함께 하우스 일을 할 수 있겠죠. 옆에 있다고 생각만 해도 위안이 되죠. 그날이 기다려져요.”

산내면 생활 8년 만에 부부는 고참 귀농 가족이 됐다. 귀농자들이 많다 보니, 마을에서도 나이 든 축에 속한다.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귀농자들도 있지만, 그래도 새로 들어오는 귀농 가족이 더 많다. 부부는 신참 귀농 가족의 좋은 안내자이다. 아내 김씨한테는 마을 사람들이 부녀회장을 맡으라고 재촉한다.

부부는 올해 문을 연 실상사 입구의 직거래 가게 운영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매주 한두차례 상추를 들고 가 150g 단위로 소포장해 냉장고에 넣어둔다. 다른 귀농 가족들도 자기가 농사지은 농산물을 진열해 놓는다. “당장 돈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부터 우리 마을 농산물을 사먹는, 그런 로컬푸드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가을 하늘이 진한 쪽빛으로 물든 날, 9년차 귀농 부부는 산비탈 하우스에서 상추를 따고 고추를 상자에 담으면서 잠시도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이따금 남편을 부르는 아내의 ‘자기야~’ 소리가 한없이 정겨웠다.

남원/글·사진 김현대 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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