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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가족 노점서 전국 30여 매장 사업공동체로

등록 2013-09-24 18:50수정 2013-09-24 19:51

1 와플대학협동조합을 끌어가는 손재원 팀장(오른쪽)과 강보미 과장이 서울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매장 앞에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은 5촌 친척 간이다. 사업 실패자들의 노점으로 출발한 ‘와플대학’이 협동조합이라는 날개를 달면서 매장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골목상권을 지킨 성공적인 협동조합 브랜드로 커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 와플대학협동조합을 끌어가는 손재원 팀장(오른쪽)과 강보미 과장이 서울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매장 앞에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은 5촌 친척 간이다. 사업 실패자들의 노점으로 출발한 ‘와플대학’이 협동조합이라는 날개를 달면서 매장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골목상권을 지킨 성공적인 협동조합 브랜드로 커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회적 경제] ‘와플대학’ 협동조합
“나만의 와플대학이 우리들의 와플대학이 됐어요. 나 혼자 와플대학 사업을 계속했다면 지금보다 잘 먹고 잘살기는 했겠죠. 이제 내 것이 우리 것이 됐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고 자부심이에요.”

‘와플대학’이 협동조합을 만났다. 손정희(53)씨와 남편 강석철(57)씨가 서울 신촌에서 와플 노점을 시작한 것은 2007년 가을. 20여년 해오던 의류 사업에서 실패한 뒤였다. 12가지 크림으로 여러 가지 상큼한 맛을 낸 손씨의 와플은 금세 대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다. ‘와플대학’이란 자랑스러운 브랜드도 대학생 고객들이 붙여준 것. “사업 실패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됐어요. 망하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거예요. 세상에는 참 어려운 사람이 많고, 결국 어려운 사람들끼리 돕더라고요. 제가 어려울 때 받은 만큼 남들과 나눠야죠. 그래야 우리 아이들도 잘되겠죠.” 와플대학은 올 3월 서울시의 159호 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손씨 부부의 와플대학은 2010년 봄, 근처에서 떡볶이 노점을 하던 홍창훈(47)씨가 찾아오면서 공동체 사업으로 확대된다. 사업 실패 뒤 시작한 노점 운영에서 어려움을 겪던 홍씨가 도움을 청했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이해하는 손씨 부부가 고민 끝에 재료와 노하우를 나누어 주었다. 와플대학 브랜드도 거저 사용하도록 했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의 노연희 팀장은 “와플대학은 그때 협동조합의 싹을 틔웠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손씨처럼 무한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이 찾아오면서, 와플대학 매장은 하나둘 불어나기 시작했다.

“협동조합을 모를 때도 우리끼리는 서로 ‘공동체다’ 그랬어요. 그런데 사업이 조금씩 커지니까 투자하겠다는 사람들도 찾아오고, 앞으로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지하철에서 서울시의 협동조합 안내문을 보게 됐어요. ‘와플대학은 이미 협동조합의 가치로 운영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손정희씨)

와플대학의 매장은 협동조합 이전인 올 3월 12개에서 불과 반년여 사이에 31개로 급증했다. 수도권을 넘어, 부산과 경남 지역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손재원(37) 마케팅 팀장은 “제도권 밖의 노점에서 협동조합 법인으로 진화하면서 신뢰라는 엄청난 자산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물품을 공급하겠다고 먼저 찾아오는 예비 협력업체들도 많아졌다.

“와플대학의 점포주들끼리 서로 믿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생긴 거예요. 그전까지는 계약도 제대로 없었어요. 우리는 공동체라는 믿음만으로 사업하다 보니 불안한 점도 없지 않았거든요.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데도 협동조합이 딱이에요. 우리 매장에서는 비마이프렌드(be my friend)라는 기아대책 사회적 기업의 유기농 커피를 판매해요. 점포주들의 자부심을 높여주죠. 우리 같은 공동체 사업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셈이죠.”

‘와플대학 협동조합’ 이후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젊은 피의 수혈이다. 그전까지는 ‘패자부활전’에 나선 50대 이상이 많았으나, 점차 30대 후반~40대 초반의 창업자들이 와플대학 점포주의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다. “자영업에 한번 실패하고 재도전하는 젊은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와플대학의 아이템이 차별성이 있고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거든요. ‘적은 투자, 낮은 리스크’의 안정적인 사업인 거죠. 게다가 협동조합이라는 브랜드가 믿음을 주었습니다. 잘나가는 직장 그만두고 와플대학 사업에 뛰어든 31살 점포주도 있어요.”

2 손재원 팀장과 강보미 과장이 와플을 판매하는 모습. 동대입구역 매장은 예비 점포주들의 실습장으로도 쓰인다.
2 손재원 팀장과 강보미 과장이 와플을 판매하는 모습. 동대입구역 매장은 예비 점포주들의 실습장으로도 쓰인다.

도움 청하는 이들에게
와플 노하우 나눠주다 보니
어느새 저절로 공동체 형성

올 3월 협동조합 정식 등록
신뢰 얻고 인적자원 풍성해져
점포주 조합 가입률 제고가 과제
“오래 이어가려면 조합이 제격”

손정희씨는 “같은 일을 하는 믿을 수 있는 식구들이 많아져서 참 좋다”고 말했다. “규
3 와플대학 경쟁력의 핵심인 12가지 수제 크림.
3 와플대학 경쟁력의 핵심인 12가지 수제 크림.
모가 커지니까 겁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협동조합이 되면서 머리 좋은 친구, 지혜로운 친구, 믿음직한 친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전문가들의 조언도 쉽게 받을 수 있게 됐고요. 인적자원이 풍성해진 거죠. 이제는 무얼 해도 겁나지 않습니다.”

와플대학은 가족사업체에서 협동조합으로 진화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사례이다. 사실 유럽에서는 가업으로 시작해 협동조합 사업체로 뻗어나간 사례가 적지 않다. 협동조합을 싹틔우는 토양이라는 공동체의 가장 기본단위가 가족인 것이다. 와플대학협동조합에서 회계와 총무, 디자인, 기획 등을 도맡아 하는 강보미(26) 기획관리과장 또한 손정희씨의 딸이다. 손재원 팀장은 손씨의 사촌동생이다. 손씨의 남편 강석철씨는 몸으로 때우는 물류 배송을 책임진다. 빠른 속도로 사업이 커지고 있어 강씨 혼자 감당하는 데 점차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창업자인 손씨는 와플대학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여러 매장을 다니면서 초보 점포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모자라는 것을 일일이 챙겨준다.

강 과장은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와플대학 매장 운영에 뛰어들었다. “취업하려니까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머니 제안으로 서울 세종대 앞의 철거 예정 건물에서 매장 운영 경험을 쌓았어요. 열달 만에 철거됐는데, 학생들이 무척 아쉬워했지요. 와플대학이 첫 직장인데,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협동조합 되고 나니까 자부심이 더 생겨요. 친구들도 알아주지요.” 도예를 전공한 강 과장은 “손공예 작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협동조합 가게를 장차 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와플대학은 올 6월 유통전문판매업으로 등록하고 와플 크림의 특허 출원을 진행하고 있다. 올 4월 서울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사에 직영 매장을 연 데 이어, 서울도시철도 5~8호선의 30여곳 역사 매점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 3호선 동대입구역사 안에 조합 사무실을 마련하고 창업자들의 실습장으로 쓸 수 있는 매장도 운영한다.

사업이 커지면서 가족·공동체 사업의 한계도 느끼고 있다. 투명 경영과 엄정한 계약 관행을 세우는 것이 길이라고 본다. 30명이 넘는 점포주 중 조합원 가입자가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가족 중심의 최초 발기인 5명에서 전체 조합원이 21명으로 늘어났으나, 매장을 운영하는 점포주 조합원은 아직 9명에 그치고 있다.

강 과장은 협동조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직까지 협동조합이 뭔지 모르는 점포주들이 있어요. 자발적인 공동체로 시작하다 보니 조합원 가입을 강제하지는 않아요. 올 8월에 이어 매 분기 점포주들을 모시고 협동조합 설명회를 열 계획이에요. 조합원 점포주들에게는 더 저렴한 가격으로 재료를 공급합니다.”

“크게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와플대학협동조합이 오래오래 깨지지 않고 갔으면 좋겠다.” 공동체의 심성이 몸에 밴 창업자 손씨의 소망이다. “노점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세금 내고 사업합니다. 책임을 다하고 권리도 누리는 거죠. 협동조합을 모를 때는 가족이 사업을 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는데, 이제는 자랑스럽습니다. 2대, 3대 이어갈 수 있는 사업체로는 협동조합이 제격이에요. 혈연의 공동체로 시작한 사업체여서 오히려 끝이 좋을 거라고 믿습니다.”

글·사진 김현대 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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