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옹기종기 소통하는 ‘이촌하우스’의 꿈

등록 2013-09-10 20:37

국내 첫 협동조합주택의 탄생을 이끈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부지를 제공하고 조합원으로 참여한 하기홍·김경혜씨 부부,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기노채 이사장과 신수임 사무국장, 불광동에서 살고 있는 조합원 안창도씨. 뒤에 보이는 낡은 2층집이 내년 가을이면 4층 건물 8가구의 작은 협동조합 공동체로 다시 태어난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국내 첫 협동조합주택의 탄생을 이끈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부지를 제공하고 조합원으로 참여한 하기홍·김경혜씨 부부,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기노채 이사장과 신수임 사무국장, 불광동에서 살고 있는 조합원 안창도씨. 뒤에 보이는 낡은 2층집이 내년 가을이면 4층 건물 8가구의 작은 협동조합 공동체로 다시 태어난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사회적 경제] 불광 협동조합주택
“이촌(二寸)하우스 어때요? 부모 자식 간이 1촌이니, 그다음 가까운 이웃이 되자는 뜻이죠.”

“전남 영광에 여민동락공동체라고 있던데, 우리는 동고동락공동체라고 하면 어떨까요? 기쁨도 아픔도 두고두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우징쿱의 불광협동조합주택 조합원들은 벌써 한 가족이 된 듯하다. 8월8일 첫 모임 이후 매주 한차례 만날 때마다 정이 깊어진다. 지난주에 열린 2일 모임에서는 앞으로 태어날 ‘옥동자’의 작명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협동조합주택 방식은 주거난을 극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환영받았다. 캐나다와 미국으로도 번져갔고,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의 기숙사협동조합도 널리 운영되고 있다. 이제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협동조합 집짓기가 시작됐다. 첫 작품의 부지(511㎡)는 주위에 적송이 드리워 있고 문을 나서면 곧장 숲길이 이어지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경관 좋은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았다. 독바위역(지하철 6호선)에서 북한산 둘레길로 들어서는 초입의 낡은 2층집을 헐어 8가구의 협동조합주택을 짓기로 했다.

하우징쿱의 기노채 이사장은 “공식 협동조합주택으로는 국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하우징쿱의 정식 이름은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2년 전부터 매달 주택협동조합의 사례와 이론을 공부하는 모임을 운영하다가 지난 6월 조합원 60명의 국내 첫 주택협동조합으로 발족했다. 불광동의 협동조합주택은 하우징쿱이 벌이는 첫번째 사업이기도 하다.

“공식 협동조합 법인격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고 집을 세우는 것은 이곳 불광동의 협동조합주택이 처음이에요. 서울 마포의 성미산마을에서 시작한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코하우징’에서 한발짝 진화했다고 할까요? 서울시의 협동조합형 임대주택도 협동조합으로 집을 짓는 것은 아니에요. 협동조합 방식으로 추진하는 거죠. 불광협동조합주택은 영속적인 협동조합 법인에서 집을 짓고 관리한다는 이점을 더할 수 있을 겁니다.”

불광협동조합주택은 10월까지 설계를 마치고, 올해 안에 착공해 내년 9월에 입주한다는 사업 일정을 세워두고 있다. 지금까지 7가족이 모였으니, 아직 한자리가 남아 있는 셈이다. 모두 은퇴를 전후한 40~50대들이다. 그들과의 대화에서는 진한 공동체의 갈증이 느껴졌다.

1호 조합원을 자처하는 하기홍(55)씨는 “늘 작은 마을공동체를 이뤘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이제 그 소망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하씨는 협동조합주택이 들어설 낡은 2층집의 주인이기도 하다. 지금은 두 부부가 살면서, 일부 공간을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근처 불광동 주민인 안창도(58)씨는 하우징쿱의 공동체문화위원장을 맡으면서, 협동조합주택의 꿈을 키워왔다. 안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합원들이 모여 의논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참 좋다. 좋은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정상담사 일을 하는 아내의 일하는 공간이 필요해, 복층으로 설계할 생각입니다.”

북한산 둘레길 초입 2층집을 헐어
협동조합주택을 짓기로 했다
2~4층에 25평형 8개 가구가
내년 9월 입주할 예정이다
은퇴 전후한 40~50대들이 모여
동고동락 공동체를 꿈꾼다
뉴타운 재건축 실패 이후
대안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작은 회사를 경영하는 안영진(52)씨는 “좋은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있고, 협동조합주택이니 믿을 수 있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안씨의 소개로 참여한 출판사 대표 이기섭(53)씨는 “집 앞의 텃밭 공간이 마음에 든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불광협동조합주택은 2~4층에 25평형 8개 가구가 입주하도록 할 계획이다. 곧 다가올 노후를 생각해, 엘리베이터도 넣기로 했다. 하우징쿱의 조합원인 서울시의 공공건축가가 설계를 맡는다. 공공건축가와 의논해 각자 취향대로 도면을 그리면 된다. 최고 품질의 신뢰 시공도 자신하고 있다. 패시브하우스 수준의 삼중단열로 벽을 두텁게 하고, 북한산 암반수를 개발해 식수로 사용한다. 옥상에는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세우고, 빗물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한다.

지하층과 1층에 입주한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4개의 상가를 들인다는 아이디어도 눈에 띈다. 북한산 길을 다니는 유동인구가 많아, 상가 임대로 가구당 월 80만원 정도의 수입을 기대한다. 그 정도면 노후의 쏠쏠한 추가 수입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합원들이 함께 마을기업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양대금은 주택지분만 치면 평균 2억2천만원, 상가지분까지 합치면 3억2천만원 정도이다. 근처 시세와 비교해도, 제법 가격이 저렴하다.

불광협동조합주택의 조합원들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 훈련에도 적극적이다. 이달 중 은평지역에서 열리는 주택협동조합 포럼과 서울마을박람회에도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주말 등산과 바비큐 파티도 계획하고 있고, 먼저 만들어진 도시의 코하우징이나 농촌의 귀농공동체마을도 돌아볼 생각이다. 조합원 대상 교육의 절반 이상은 갈등관리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이웃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서로 가까이 살아간다는 게 오히려 갈등과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 이사장은 협동조합주택이 뉴타운 재건축 실패 이후의 대안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호 협동조합주택이 들어설 우리 불광동 부지도 재건축에서 해제된 곳이에요. 이제 뉴타운 방식의 대규모 재건축을 다시 기대할 수는 없잖아요. 기존의 공동체도 살리면서 소규모로 새집을 지을 수 있는 협동조합 방식이 부분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기 이사장은 “우리가 불광동에서 협동조합주택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니까, 재건축 해제 지역에서 제법 많이 문의가 들어오더라”고 귀띔했다.

안창도씨는 10여년 전 재건설조합에서 조합원들끼리 패가 갈려 싸우는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기존의 재개발·재건축 주택조합은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가 없잖아요. 투기차익을 노리는 이해관계자들의 일회성 프로젝트이고, 비리의 복마전이죠. 협동조합 방식을 잘 활용하면 그 지역에 맞는 다세대주택이나 다른 형태의 공동체 주거 공간을 투명하고 저렴하게 세울 수 있어요.”

하우징쿱의 기 이사장은 불광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방식의 협동조합주택을 짓는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서유럽에서는 대규모 협동조합주택 공급 방식은 퇴조하는 것 같아요. 정부 지원도 줄어드는 추세이지요. 양적 공급이 충분히 이뤄졌거든요. 양적 공급이 많다는 점에서는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협동조합주택의 적극적인 수요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크다고 봅니다. 공동체와 소통하는 곳에서 좀더 저렴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는 채워지지 않고 있잖아요.”

서울시는 이런 수요를 반영해, 가양동과 만리동에서 주택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의 모델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시에서 토지와 건물을 지어 공급하는 임대주택이지만, 실상은 협동조합의 가치와 방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가양동의 협동조합형 주택은 3살 미만의 어린아이를 둔 가족의 공동육아형을 지향하고 만리동은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기 이사장이 생각하는 협동조합주택의 공급 방안은 3단계이다.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기존의 임대주택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전환하고, 중저소득층에 대해서는 협동조합주택 설립을 위한 공공부지를 빌려주는 방안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중산층 이상의 협동조합주택이라면, 자기 부담으로 협동조합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제도상의 미비점을 덜어주면 될 것이다.

“지금 건축법으로도 20가구 미만의 공동주택이나 30가구 미만의 도시형 생활주택은 협동조합으로 지을 수 있어요. 까다로운 분양 규제를 받지 않거든요. 다만 주택협동조합을 일반 기업과 똑같이 취급하다 보니, 개인이 집을 집을 때보다 금융과 세제에서 오히려 더 불리합니다. 전례가 없어서 그럴 텐데, 적극적으로 고쳐 나가야겠지요. 용감하게 첫걸음을 뗀 불광협동조합주택의 실험이 좋은 본보기가 되고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합니다.”

김현대 기자 koala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에어부산 화재 이후 ‘보조배터리 규정’ 관심…100Wh 이하만 기내반입 1.

에어부산 화재 이후 ‘보조배터리 규정’ 관심…100Wh 이하만 기내반입

‘이거 르노 차 맞아?’ 그랑콜레오스, 판매량 역주행 이유 있네 2.

‘이거 르노 차 맞아?’ 그랑콜레오스, 판매량 역주행 이유 있네

딥시크 충격, 하이닉스는 어떨까…6일 쉰 국내 증시 여파는? 3.

딥시크 충격, 하이닉스는 어떨까…6일 쉰 국내 증시 여파는?

상위 0.1% 자영업자 15억 이상 번다…서울은 25억 넘어 4.

상위 0.1% 자영업자 15억 이상 번다…서울은 25억 넘어

에어부산 “승무원, 후방 좌측 선반에서 발화 최초 목격” 5.

에어부산 “승무원, 후방 좌측 선반에서 발화 최초 목격”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