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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조종사들 ‘소통 부재’가 사고 불렀나?
사고 전 아시아나항공에 무슨 일이…

등록 2013-09-03 17:00

지난 7월6일(현지시각) 오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214편 B777-200 여객기가 착륙하다 활주로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충돌한 여객기 잔해의 모습.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130명이 다쳐 병원에 옮겨졌다. (KTVU 캡처) 2013.7.7/뉴스1
지난 7월6일(현지시각) 오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214편 B777-200 여객기가 착륙하다 활주로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충돌한 여객기 잔해의 모습.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130명이 다쳐 병원에 옮겨졌다. (KTVU 캡처) 2013.7.7/뉴스1
조종사간 갈등 부추기는 뿌리깊은 문화
내부 직원들 “사고기 조종사들 평소에도 서먹”… 비노조원 분리 우대가 갈등 원인 지적도

항공기 사고는 한 요인만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다. 조종사나 관제사의 실수, 악천후 등 자연적 요인, 기체나 활주로 결함 같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아시아나항공 OZ214편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불시착 사고의 원인을 어느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평소 사소했던 문제가 예상치 못한 큰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번 사고를 전후해 아시아나항공 내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여다봤다.

마지막 16초를 앞둔 조종석은 순식간에 혼돈과 통제 불능 상황에 빠져들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을 코앞에 둔 아시아나항공 OZ214편 부기장석에 앉은 이정민 교관의 눈에 빨간 등 3개가 들어왔다. 비행기 진입 고도가 낮아 자칫 활주로에 부딪칠 수 있다는 신호였다. 계기판이 가리키는 고도는 500피트였다. 당황한 조종사들은 고도와 출력을 높여 ‘고 라운드’(복항)를 시도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활주로 입구 방파제에 랜딩기어가 부딪치고 말았다. 뒤늦게 전달된 출력과 들려 있는 기수 탓에 비행기 꼬리 부분이 활주로와 충돌하며 부러졌다.

항공기 사고는 한가지 요인만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다. 조종 미숙, 관제 오류, 기체나 공항의 결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고가 난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정밀착륙유도장치(ILS) 작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ILS가 정상 작동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관제탑과의 교신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조종사는 네차례나 교신을 시도한 뒤에야 착륙 허가를 받았다. 관제사들은 착륙 중인 사고기의 고도나 속도를 모니터링도 하지 않았다. 또 지나치게 높은 고도에서 착륙에 들어가도록 유도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종 실수나 미숙에 대한 시비를 피해갈 수는 없다. 같은 조건에서 다른 항공기들은 무사히 착륙했기 때문이다. 조종사들은 엔진 출력을 자동으로 조절해 항공기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오토스로틀’(Auto Throttle)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이런 사실이 곧바로 기체 결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토스로틀이 원래 고장일 수도 있지만 조종사가 수동으로 전환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사고조사가 마무리되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 조종사들은 물론 아시아나항공 내부에서조차 사고 책임의 50% 이상이 조종사 과실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이들이 거론하는 것은 오랫동안 일상화된 조종사들 사이의 내부 갈등과 소통 부족이다. 서로 대화를 하지 않을 정도로 갈등과 알력이 심하다는 것이다. 과연 아시아나항공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이를 파악하기 위해 전·현직 아시아나항공 관계자와 다수의 국내외 조종사를 만났다.

전후 사정을 이해하려면 우선 이번 사고의 정확한 경위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고항공기인 OZ214편은 활주로 전방 10마일 지점에서 본격적인 착륙 절차에 들어갔다. 당시 고도는 4천피트였다. 통상 조종사들은 착륙 중인 항공기의 가장 이상적인 고도(ft)를 활주로와의 남은 거리(mile)에 300을 곱한 값으로 본다. 즉, 활주로까지 남은 거리가 10마일이라면 항공기가 고도 3천피트에 있어야 ‘안정된 경로’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데버러 허스먼 위원장이 사고 뒤 브리핑에서 당시 비행기의 고도가 “다소 높았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는 데브라 허스먼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위원장. 허스먼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엔진 출력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장치(오토스로틀)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는 데브라 허스먼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위원장. 허스먼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엔진 출력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장치(오토스로틀)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조종사 과실, 사고 책임 50% 이상일 가능성

활주로까지 남은 거리에 비해 고도가 높으면 착륙을 위해선 고도를 급격히 낮춰야 한다. 조종사들은 이를 ‘찍어 누른다’고 표현한다. 사고기 조종사가 분당 1500피트의 강하율로 내려간 이유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독일 조종사들의 말을 빌려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안정적인 착륙을 하기가 불가능한 곳”이라며 “이 공항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건 시간문제였다”고 지적한 것도 아시아나항공기처럼 관제사가 짧은 시간에 급경사 착륙을 유도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공항 이착륙 비행기가 많다보니 착륙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주변의 소음 제한 규제 탓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착륙 실패율은 전세계 국제공항 가운데 가장 높다.

한 조종사는 이에 대해 “표준 규정보다 강하율이 높긴 하지만 착륙이 불가능하거나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할 상황은 아니다”며 “다만 너무 많이 내려간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앞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한 다른 아시아나항공기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문제없이 착륙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고 이틀 전 같은 공항에 착륙한 아시아나항공기는 활주로 앞 10마일 지점 고도가 4100피트였다. 이 항공기는 1천피트까지 사고 항공기와 거의 같은 강하율로 고도를 낮췄다.

이 항공기와 사고기의 결정적 차이는 활주로를 1.3마일 앞둔 지점(사고 32초 전)에서의 속도였다. 이틀 전 착륙한 항공기는 착륙 권장 속도인 137노트가량을 꾸준히 유지한 반면, 사고기는 속도가 점차 느려져 활주로 전방 약 1마일 지점(충돌 30여초 전)에선 권장 속도 이하로 떨어졌고 0.2마일 지점에선 118노트까지 떨어졌다. 고도도 200피트까지 내려앉았다.

허스먼 위원장은 “음성기록장치(CVR) 등을 분석한 결과 충돌 9초 전까지도 조종사들의 대화에는 특이 사항이 없었다”며 “충돌 3초 전 조종사 중 한명이 ‘복항’을 외쳤고 이후 충돌 1.5초 전에도 ‘복항’을 외치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고 밝혔다. 그 이전엔 속도가 떨어지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종사들은 NTSB 조사에서 “항공기의 출력을 자동으로 유지해주는 오토스로틀을 137노트에 설정했으나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오토스로틀은 조종사가 원하는 속도를 입력하면 비행기가 엔진 출력을 자동으로 조절해 정해진 속도를 유지해주는 장치다. 일부에선 이를 근거로 오토스로틀 고장을 의심하며 기체 결함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 오토스로틀이 고장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사고 원인 규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NTSB는 이와 관련해 블랙박스 자료를 다시 확인한 결과 오토스로틀 기능에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설사 오토스로틀이 고장났다고 하더라도 (이를 점검하지 않은) 조종사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서먹했던 두 조종사 ‘감정의 골’ 있었나?

주목할 만한 건, 국내 조종사·정비사·전문가들이 기체 결함보다 조종사가 오토스로틀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기의 이강국 기장은 보잉777기로는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이 처음이었다. 이 기장은 당시 보잉777 기종 전환 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그전까지 에어버스 기종을 주로 운항했던 이 기장이 보잉777기를 운항한 건 4차례로 모두 43시간에 불과했다.

ㄱ 조종사는 “자동착륙 상태였다면 비행기가 고도·속도·방향 등을 알아서 잡아주니까 조종사는 체크리스트만 점검하면 된다. 그러나 기종이 다르고 크기도 다른 항공기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눈으로만 보고 내리는 건 쉽지 않다. 조종 시스템이 달라진데다 전에 탔던 에어버스320에 견줘 대형기라 조종석의 위치도 높다. 승용차와 트럭을 운전할 때 감각이 전혀 다른 것과 유사하다. 운항 경력이 짧은 이 기장이 바뀐 조종 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종을 바꿀 때 여러 실수를 저지르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게 이번 사고처럼 시계 접근 중 고도가 낮아졌을 때다”고 말했다.

외국 항공사에서 교관을 맡고 있는 ㄴ 조종사 역시 “항공기가 높은 고도에서 신속하게 내려오기 위해 강하율을 높게 하면 속도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훈련 조종사들 가운데는 이럴 경우 속도를 줄이기 위해 아예 오토스로틀 기능을 일시적으로 해제하기도 한다. 해제 버튼은 쉽게 끌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비탈길을 내려가는 자동차에선 기어를 ‘중립’ 모드에 둬도 속도가 크게 줄지 않는다. 그러나 내리막길을 내려온 뒤에는 다시 ‘주행’ 모드로 전환한 뒤 가속기를 밟지 않으면 출력을 얻을 수 없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이 조종사는 “비행 경력이 짧거나 경험이 없는 조종사가 수동 착륙 과정에서 활주로 접근 경로에 과도하게 집중하다보면 오토스로틀을 해제한 걸 깜빡 잊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나항공 내부의 한 조종사는 “샌프란시스코 공항 사고 전에도 이강국 기장이 비슷한 실수를 해서 교관회의에서 기장 훈련 중지를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강국 기장이 습관적으로 오토스로틀을 해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설령 이강국 기장이 실수를 했더라도 옆자리에 있던 조종사는 속도와 고도를 모니터링했어야 한다. 당시 부기장석에는 교관 역할을 겸한 이정민 조종사가 앉아 있었다. 이 교관은 보잉777기 운항 경력만 3220시간에 이르는 베테랑 조종사다. 그런 그가 사전에 아무런 경고나 조처를 취하지 않고, 떨어지는 속도를 인지하지 못했던 건 왜일까? 전문가들은 이 교관과 관제탑의 교신이 원활하지 못했던 데서 원인을 찾는다. 사고기 조종사들은 4번의 교신 시도 끝에 관제탑으로부터 착륙 허가를 얻어냈고 그 과정에 집중하느라 미처 속도계를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회사 운항 관리상의 문제는 또 다른 쟁점이다. 이정민 교관 역시 사고기 운항이 교관으로서 첫번째 임무 수행이었다. 초보 기장과 초보 교관을 한팀으로 묶어, 그것도 착륙이 가장 까다로운 공항에 보낸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ㄷ 조종사는 “전형적인 스케줄 미스(잘못된 운항 관리)다. 우리 회사에선 거의 없는 사례다. 중간에 이정민 교관의 비행 일정이 급하게 바뀌면서 일어난 것”이며 “통상 기장 전환 훈련을 할 때는 교관이라 하더라도 기장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지 않는다. 다른 기종에서 이미 기장을 맡았던 경험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또 교관이 조종간을 직접 맡겠다고 하는 순간 기장 훈련이 중지되면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 많은 교관은 초보 기장이 도저히 착륙을 못할 것 같으면 말없이 알아서 도와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때 이런 도움이나 결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종석에선 문제나 위험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면 누구라도 주저 없이 서로 조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두 조종사는 평소 대화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서먹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 노조 관계자는 “비행하는 동안 서로 소통에 문제가 있거나 감정의 골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배경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간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반목이다. 공교롭게 이정민 교관과 이강국 기장은 이런 갈등의 양 축에 있었다. 사고 뒤 아시아나항공 일부에선 이번 사고를 두고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말이 흘러나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갈등이 불거진 건 2005년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 파업을 전후해서다. 당시 노조는 처우 개선과 운항 안전 등을 요구하며 25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파업으로 국제선 일부와 제주노선을 제외하고 비행이 중단됐다.

아조협과 노조의 뿌리 깊은 반목

결국 노동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업무에 복귀했지만 이 과정에서 조종사들 내부에 깊은 생채기가 남게 된다. 파업 직전 일부 노조원들이 승급이나 보직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파업에 불참했고, 특히 공군사관학교 출신 고참 조종사 몇몇이 주축이 돼 노동조합이 군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노조를 집단 탈퇴한 것이다. 이 조직은 나중에 ‘아시아나항공 조종사협의회’(이하 아조협)가 된다. 이후 공사 출신 후배들을 적극 영입한 아조협은 점차 세력을 키웠고, 아조협 회원과 노조 탈퇴 조종사들은 조종사 인사와 운항 관리 등을 맡는 주요 부서의 요직은 물론 대형기 기장 자리를 거의 독차지했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 역시 노조 힘빼기 차원에서 아조협을 적극 활용했다”며 “파업 이후 노조에 남아 있는 건 곧 불이익을 의미했고 노조를 탈퇴해야 그나마 떡고물이라도 얻어먹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강국 기장은 노조원이었지만 파업에 참가하지 않고 노조를 탈퇴한 뒤 보잉737 기장으로 승격했고, 에어버스320 기장을 거쳐 대형기인 보잉777 기장으로 전환했다. 또 보잉777 기종 전환 훈련 전까지 조종사를 관리·감독하는 운항지원팀 업무를 맡았다. 지상근무가 많다보니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비행시간이 다른 조종사의 절반 수준인 549시간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대형기 기장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비노조원에 대한 우대라는 게 노조의 시각이다.

조종사들은 처우나 경력관리에 유리한 대형기 조종사를 원한다. 급여도 소형기에 견줘 매달 200만~30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실제 이 기장은 대형 기종 기장이 될 마지막 기회를 잡은 경우다. 아시아나항공은 앞으로 대형 기종으로 에어버스 350과 380 기종만을 도입할 계획이다. 그에 앞서 올해 마지막 13번째 보잉777기가 도입됐다. ㄷ 조종사는 “능력 있는 다른 노조원 출신 조종사가 기장으로 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결과가 다르게 나오면서 보잉777기 조종사들 사이에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위태위태하던 노조원과 비노조원, 특히 아조협과의 갈등은 사고 2개월 전에 노조원인 최아무개 부기장의 기장 승격 심사 과정에서 폭발했다.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지난 4월 실시된 최 부기장에 대한 기장 승격 심사에서 국토부 심사관이 구두로 합격을 통보했는데도 동승한 회사 쪽 심사관이 이륙 과정에서 규정 속도를 초과했다며 합격 취소를 요구한 것이다. 국토부가 이를 수용하자 노조는 “노조원인 부기장을 떨어뜨리려고 일부러 왜곡된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했고 아조협 회원이던 심사관과 회사는 “문제없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국토부는 해당 기장을 불합격 처리했다. 이후 최 부기장과 노조는 불합격 사유를 공개하라며 감사원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이에 떠밀린 국토부는 항공기 제조사로부터 속도 초과가 아니라는 답변을 받고서야 최종 합격을 통보했다. 3개월여 만인 7월28일이었다.

양쪽의 이런 날카로운 대립이 사고기 조종석에 고스란히 투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내부 문제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항공기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불안 요인이라는 점이다. 상사와 부하,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 노조원과 비노조원, 권력자와 비권력자 간의 간격, 즉 ‘파워 디스턴스’(Power Distance)가 멀어질수록 중요한 순간 결정적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조직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사고 직전 뒤숭숭했던 조종사들

ㄷ 조종사는 “2000년 초반엔 모두 노조원이다보니 출신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호형호제하는 분위기였다. 비행 중에도 비록 부기장이지만 문제가 있거나 이상 징후가 있다고 판단하면 자유롭게 건의하고 기장은 이를 수용했다. 조종석은 유대감과 신뢰를 가진 하나의 팀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불신과 증오가 커지면서 그렇지 못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고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뿐만 아니라 줄서기와 차별적인 조직문화는 유능한 국내 조종사들이 염증을 느끼고 항공사를 떠나게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항공 안전 토대를 더 허약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한 전직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는 “출신 좋고 줄만 잘 서면 실력과 상관없이 우대받고 승진하는 문화에서 누가 비행 관련 공부를 하고 안전도 수준을 높이려 하겠느냐. 급여가 낮은 이유도 있겠지만 사고에 대한 두려움도 실력 있는 국내 조종사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다”며 “그 빈자리를 경력도 일천하고 이름도 없는 외국 항공사 출신의 외국인 조종사들이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현재 국내 항공기 조종사 4530여명 가운데 외국인 조종사 수는 530명으로 약 12%를 차지한다. 국적기 기내 방송마저 영어로 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조종사들이 우대받고 있지만 비행 실력까지 뛰어난지는 의문이다. 한때 위험 상황 등에 대비해 모의 비행장치(시뮬레이터)로 훈련을 받거나 검열을 하면 상당수 비노조원 조종사들이 탈락하기도 했다. 이는 이번 사고 뒤 한 외국인 조종사가 남긴 글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항공사에 5년여간 모의비행장치 훈련과 검열을 담당했던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직원은 “일부 조종사들은 경력·실력에 비해 기장 승진이나 전환이 빨랐다. 미국과 비교하면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었다”며 “무엇보다 당황했던 건 그들의 비행 기술 부족이었다. 특히 그들은 시계 접근에 대해 깊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많은 조종사들이 이번 사고에 대해 사고기 조종사들의 실수 가능성을 거론하면서도 근본 원인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아시아나항공의 내부 문화를 꼽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를 극복할 또 다른 연착륙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에는 사고가 없어야 한다.

이재명 부편집장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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