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무브’의 다섯 멤버들. 오른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원준호 대표, 손예슬, 이지현, 김원경, 정재식씨. 권오성 기자 2. 커무브가 올해 5월 학교 축제에서 진행한 국내 최초의 ‘좀비런’ 이벤트. 이하 커무브 제공 3. 6월24~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노년건강학대회’에 참가해 한국 전통문화와 운동 등을 소개하고 있는 커무브.
한겨레 기업특집|창조경영
벤처 준비기업 ‘커무브’ 대학생 5명
벤처 준비기업 ‘커무브’ 대학생 5명
서울 신촌에 있는 연세대학교 공학원 지하 1층. 주차장과 연결된 허름한 철문을 지나니 30평 가량의 면적을 어른 키 높이의 파티션으로 촘촘히 나눈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8개 학생 스타트업(창업 초기 신생 벤처기업)들이 둥지를 튼 연대 학생벤처센터다. 3평 남짓한 크기의 한 사무실에 들어서니 책상과 컴퓨터 사이로 사무집기와 커피포트 등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지난 16일 이곳에서 만난 벤처 준비기업 ‘커무브’의 원준호(27·연대 경영) 대표는 “조금 누추하지만 꿈을 일구는 보금자리”라며 기자를 맞았다.
커무브는 ‘스포츠를 통해 사람의 몸, 마음 그리고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5명의 대학생이 구성한 창업 조직이다. 회사 이름인 커무브(Comove)는 ‘함께’(co)+‘움직인다’(move)는 뜻을 담고 있다. 처음 사업을 제안한 원 대표는 과거 가슴 아팠던 기억에서 창업의 동기를 얻었다. “의무소방대원으로 군대 생활을 했는데, 자살한 사람들을 직접 목격할 일이 많았습니다. 같은 소방대에 있던 한 소방대원께서 스스로 목을 맨 모습까지 보았어요. 네 가족의 가장이기도 하셨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많이 고민했죠.”
스포츠 통한 사회 활력 모색
처음엔 어떻게 하나 막막했지만
연대 축제 때 ‘좀비런 행사’
예상인원 두배 넘는 호응 계기로
노년운동 콘텐츠 등 사업 구체화 그는 여럿이 함께 움직이는 스포츠 활동이 있었다면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고, 이를 ‘소셜벤처’(사업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벤처기업)로 풀어나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지난해 7월 평소 교류가 있었던 한양대 경영전략 동아리에 이런 뜻을 밝혔고, 김원경(23·한양대 경영), 이지현(22·한양대 경영)씨가 함께 손을 잡았다. 김씨는 창업을 위해 대학 자퇴까지 고민했을 정도로 자신의 길을 일찌감치 창업 쪽으로 잡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이른바 ‘깡패’ 생활을 하다 입대한 선·후임들이 많았습니다. 내무반에서 그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주곤 했는데, 어느새 10여명 앞에서 강연까지 하게 되었죠. 제대 뒤 갈 곳을 잃은 그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군인을 콘셉트로 한 전국적인 닭꼬치 체인을 만들자고 했죠.” 그는 인천에서 닭꼬치 노점상에 직접 뛰어들며 준비에 나섰다. 창업을 위해 자퇴서까지 낼 계획이었지만, “노점상이라는 불안정한 사업에 끌어들여 정말 그들에게 도움이 되겠느냐”는 부모의 조언에 학업으로 돌아왔다. 그랬다가 커무브를 결성한 것이다. 그러나 추상적인 비전을 사업으로 구체화시키는 게 만만치 않았다. 김씨는 “중·고등학교부터 시킨 일을 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새 길을 나서기란 쉽지 않았다. 사업 시작 두 달째에는 ‘오늘은 뭘 해야 하나’ 하고 종일 멍했던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도입하는 방식들을 고민했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뒤늦게 합류한 정재식(25·연대 경제)씨가 낸 아이디어가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올 5월 연대 대학 축제에서 커무브가 진행한 ‘좀비런’ 행사였다. 좀비런이란 준비된 코스를 좀비로 분장한 자원봉사자들을 피해 종착지까지 도달하는 활동형 게임으로 외국에서는 좀비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바 있다. ‘취업의 좀비가 된 20대들이여 뛰어라’라는 콘셉트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번 행사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제안을 받은 학내 단체들의 참여로 100명의 좀비가 금방 모였고, 500명 정도로 예상했던 참가 인원은 수용할 수 있는 제한인원인 1200명까지 차버렸다. 커무브는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스포츠 마케팅의 기본과 조직적인 관리 등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커무브는 이후 소외 문제가 더 심각한 노년층으로 대상을 좁히는 등 사업을 더 구체화하고, 이들을 위한 운동 영상 콘텐츠 개발, 노인복지센터 연계 강의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커무브는 올해 6월 막내인 손예슬(19·이대 서양화)씨까지 디자이너로 합류하면서 지금의 구성을 갖췄다. 미술을 통한 심리치료 활동을 해왔던 손씨는 운동을 통한 심리치료라는 커무브의 비전에 즉각 동감했다. 또 “대학 1학년생이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이란 점도 있었다. 커무브는 현재 사업자등록 신청을 마치고 등록증을 기다리는 중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과 대기업 같은 안정된 직장을 찾는 요즘, 취업이 아닌 창업을 택한 이들에게 보내는 주변의 우려는 당연한지 모른다. 이지현씨는 “주변에 슬슬 취업하는 친구들이 나온다.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원 대표의 부모님도 일부러 험한 길을 택해 가는 아들이 걱정이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없던 길을 가는 불안보다, 새 길을 만드는 매력에 더 푹 빠져 있다. 원래 아나운서가 꿈이었고 지상파 방송사의 최종 면접까지도 올랐던 정씨는 낙방 뒤, “세상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스티브 잡스의 동영상을 끝없이 보다가 창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의 화술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더 마음을 사로잡았죠.” 정씨는 창업으로 진로를 틀면서, 자신이 원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다음 학기 컴퓨터공학을 부전공할 계획이다. 이지현씨는 “취업은 보통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지만, 창업은 들어와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요즘, 이들은 분위기가 사뭇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원 대표는 “직접 창업에 나서는 이들이 느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각종 지원이 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창업하면 ‘의외’라고 보던 시각이 요즘은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창업 활성화를 위해 정말 절실한 것은 획일화된 지원보다 구체적인 조언과 공정한 조건의 확립이라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원 대표는 “창업 강좌 등 다양한 지원을 받아봤지만 학문적 원론보다 실제 기업에서 뛰어본 멘토의 실용론이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정씨는 “주변에서 어느 정도 사업성이 확인되면 대기업이 아이템을 가져가 버리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더러는 창업은 뒷전이고 또다른 ‘스펙 한줄’ 쌓는 수단으로 벤처를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 구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는 전국의 벤처보육센터 수는 지난해 말 기준 290개, 입주기업 수는 5123개에 이르렀다. 2010년 4818개, 2008년 4532개에 비해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창조경제의 성패는 커무브와 같은 5000여개의 꿈이 어디까지 가서 닿느냐에 달려 있는지 모른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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