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협동조합 직원들과 자리를 함께한 베릴 바워 이사장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의 미래, 캐나다를 가다 ① 러노어호수 마을
협동조합의 미래, 캐나다를 가다 ① 러노어호수 마을
캐나다 중부의 광활한 평원에 자리잡은 서스캐처원주와 서부 밴쿠버 지역의 협동조합을 각 지역의 아이쿱생협 이사장들과 함께 둘러봤다. 캐나다 중서부 협동조합의 영광과 도전 이야기를 세차례로 나눠 싣는다.
서스캐처원주의 최대도시 새스커툰에서 동쪽으로 훔볼트라는 소도시를 지나 2시간을 달리면 호수를 낀 작은 마을이 나온다. 대평원에서 주로 곡물농사를 짓는 인구 320명의 러노어호수(Lake Lenore) 마을이다. 캐나다에서도 보기 드문 협동조합 공동체로 꼽힌다. 크고 작은 7개의 협동조합이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는다.
하나뿐인 식품점 폐업 위기 놓이자
주민들 돈 갹출해 가게 인수 추진
‘선배’ 조합 지원으로 식품조합 결실
육아조합·온실조합 등 잇따라 탄생 러노어호수 마을을 방문한 5월31일, 마침 마을회관에서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암 연구를 지원하고 마을 사업을 후원하는 기금 모금 파티예요.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바비큐 햄버거를 만들고, 주민들이 5달러를 내고 점심을 사먹지요. 어르신들에게는 즐거운 자리가 되고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데리고 와요.” 자원봉사를 하던 글렌다 허버너(49)는 “200명의 주민이 행사에 참여했다. 1000달러 이상의 기금이 금세 모아졌다”며 즐거워했다. 이날 파티가 열린 러노어호수 마을회관은 그 자체가 협동조합이다. 1979년 마을회관을 새단장하면서 자금을 모으고 회관운영을 책임질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1996년 가을,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식품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날벼락이었지요. 식품점이 없어지면 먹거리 하나 사려고 33㎞ 떨어진 훔볼트로 나가야 하거든요. 주민들이 공동체 회의를 열어 가게를 살리기로 하고 위원회를 조직했어요.” 당시 위원회 멤버로 가게인수협상에 나섰던 베릴 바워는 “주민들이 협동하면서 인수가격을 애초 20만달러에서 13만달러로 떨어뜨렸다”고 회상했다. 식품협동조합이 출범한 뒤 줄곧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바워는 서스캐처원협동조합연합 회장이기도 하다. “인수자금을 조달하고 가게를 운영할 법적 주체가 필요했어요.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을 세우자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주민들은 협동조합에 대한 융자 형식으로 각자 500달러를 냈지만 사실상 기부였어요. 지금까지 이자 한푼 안 받고 상환을 요구하는 주민도 없어요.”
주민들의 합심으로 7만8000달러의 자금을 모으자, 지방정부에서 2만달러 융자 지원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선배 협동조합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마을회관협동조합에서는 그전까지 쓰고 남은 8000달러를 전액 무상으로 제공했다. 나머지 4만달러가량의 자금은 마을의 어드밴티지 신용협동조합에서 저금리로 지원받았다. 최초 물품구입 자금 4만5000달러는 러노어호수 농협에서 빌렸다. 15년이 넘도록 상환요구가 없으니 사실상 무상 기부를 받은 셈이다. 매장 공사는 바닥 타일부터 페인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마을 주민들의 울력으로 해결했다. 지붕 슬레이트는 110명 주민한테서 1개씩 기부를 받았다. 지붕 공사는 주민 32명이 힘을 합쳐 토요일 하루 동안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1997년 3월15일, 천신만고 끝에 러노어호수 식품협동조합 매장이 문을 열었다.
2004년에는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을 ‘창조’했다. 서스캐처원주에서 유일한 온실협동조합이다. 주민 25명이 2500달러씩 협동조합에 융자하는 방식으로 설립자금을 모았다. 이때에도 어드밴티지 신협이 나섰다. 모자라는 자금 7만5000달러를 좋은 조건으로 공급했다. 온실협동조합의 사업은 성공적이어서, 5, 6월 두달만 운영하고도 연 2만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올린다. 안정적인 흑자기조에 올라서지 못한 식품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은 러노어호수 마을에서 자랑하는 또 하나의 성공사례이다. 캐나다의 시골마을에서도 젊은이들이 귀하기는 마찬가지. 새로운 피가 돌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돌보는 공간이 절실했다. 2011년 정부 지원을 받아 조합원 28명이 학교 공간을 공동육아 시설로 리모델링했다. 어드밴티지 신협을 비롯한 지역사회 기관들도 현금 5000달러와 가구 등을 기부했다. 지금은 15명의 아이들이 돌봄을 제공받고 있다.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민들의 협동조합과 재해보험을 제공하는 협동조합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러노어마을의 협동조합들은 ‘협동조합 간의 협동’과 ‘지역사회 기여’라는 대원칙을 실천한 모범사례라는 점에서 더더욱 돋보인다. 그 한가운데에 어드밴티지 신협이 있다. 식품협동조합도, 온실협동조합도 신협의 자금지원이 없었다면 세상의 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 영업실적도 재무자료도 없는 신설 협동조합에 선뜻 자금을 공급해줄 은행은 캐나다에도 없다.
“어드밴티지 신협은 1960년대에 세워졌어요. 몬트리올은행이 우리 마을을 버리고 떠난 직후였죠. 마을 주민들이 출자금을 모집해 신협을 세웠어요. 이제 신협은 우리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에요. 바비큐 파티 식재료도 신협에서 공급하고, 아이들 협동조합 캠프 비용도 신협에서 지원해요.” 도시로 떠난 사람을 포함해 780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어드밴티지 신협은 마을관계위원회를 설치해 마을후원사업의 범위와 규모를 결정한다.
가장 오래된 러노어호수 농협은 종자와 비료 공급, 주유소 운영, 농기계 판매 및 공동이용 등 규모있는 사업으로 연 2000만달러의 매출과 100만달러 이상의 안정적인 순이익을 올리고 있다. 협동조합의 맏형답게 동생 협동조합을 밀어주고 당겨주는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농협 조합원 770명은 대부분 신협과 식품 및 온실협동조합 설립을 이끈 조합원이기도 하다. 레지 프로달 농협 이사장은 “동생 협동조합들이 어려울 때 끌어주는 것은 우리 협동조합의 당연한 의무이다. 다른 협동조합들이 잘돼야 우리도 잘된다”고 말했다.
시골마을인 러노어호수 마을 협동조합들의 미래가 장밋빛 일색인 것은 아니다. 대형 마트들이 무섭게 시장을 잠식하면서 식품협동조합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직원들이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것 또한 연금 비용을 절감하자는 목적이 크다. 시골마을의 지속적인 인구감소 추세도 불안하다. 베릴 바워 이사장은 “우리 가게만 이용하는 조합원은 50명 정도이고, 세일 때만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30여㎞ 떨어진 훔볼트의 대형 매장들에 비해 우리가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절반은 성공했지만 앞으로 고통스런 변화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이 믿을 것은 서로 협동하는 것과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것이에요. 프린스앨버트라는 지역에서는 12개의 작은 협동조합 매장을 유지하면서도 대형마트를 이겨내고 있어요. 협동조합끼리 서로 도우면서 착한 돈(good money)을 벌고 있지요.” 바워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강조한 협동조합의 첫번째 성공비결은 ‘협동조합 간의 협동’이었다.
러노어호수마을·훔볼트(캐나다 서스캐처원주)/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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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마을회관에서 열린 바비큐 파티에 참석한 아이들.
마을에서 운영한다(locally owned)는 글을 큼지막하게 써붙인 식품협동조합의 운송차량.
공동육아협동조합 입구에 예쁘게 써붙인 후원자 명단. 협동조합들이 다 참여했다.
■ 안철수 “대선 출마 안하면 이민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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