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헌릉로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표지석 옆으로 17일 오후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계열사간 거래 축소’ 발표 눈길
글로비스·이노션등 일감
직발주·경쟁입찰로 돌려
“선제적 결단”-“생색내기”
재계안팎 평가는 갈려
삼성등 후속반응 관심
글로비스·이노션등 일감
직발주·경쟁입찰로 돌려
“선제적 결단”-“생색내기”
재계안팎 평가는 갈려
삼성등 후속반응 관심
현대자동차그룹이 17일 물류와 광고 계열사인 글로비스와 이노션의 국내 발주 물량을 중소기업에 대거 직발주하거나 경쟁입찰로 돌리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독려에 현대차가 적극 호응하며 선제적 결단을 내린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그룹은 이노션에 수의계약으로 발주했던 그룹 및 계열사 기업 광고 제작, 국내 모터쇼 프로모션 등 각종 이벤트 등을 중소기업에 직발주하거나 경쟁입찰시키기로 결정했다. 물류 부분에서는 계열사 공장 간 부품 운송, 공장 내 운송 및 운송장비 운용 등을 글로비스가 아닌 외부업체에 맡긴다. 광고·마케팅과 물류 등에서 모두 6000억원어치의 일감을 그룹 내부 계열사가 아니라 중소기업 등 외부에 풀겠다는 것이다. 또 물류 입찰에서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 중소기업에는 물류 노하우를 전수하고, 국내 중소 물류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물류산업진흥재단’ 설립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중소기업에 (대기업 이익 확대의) 온기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해서 방법을 찾다가 나온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광고나 물류에서 계열사가 아닌 외부업체이 일을 맡긴 것은 유로 2012 영상물 제작(3억1600만원) 등 몇 건 안 되는 소액 계약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물량들을 확대해 중소기업들에 확 풀어 성장을 돕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발표에 대해서는 우선 최근의 경제민주화 이슈에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6000억원이라는 상당한 금액 외에도 그동안 글로비스나 이노션이 쌓아온 전문성과 효율성을 상당 부분 포기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신지윤 케이티비(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효율성을 일부 잃더라도 이에 부응하려고 한 것이다. 기업가치 측면에서도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제개혁연대나 참여연대도 일단 “현대차그룹의 자율적 노력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하지만 글로비스와 이노션이 그동안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혀왔다는 점에서 등 떠밀려 나온 결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두 회사는 현대차그룹의 발주 물량을 빨아들이면서 손쉽게 수익을 거두고 그 이익이 고스란히 총수 일가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나 감사원 등에서 글로비스가 집중적으로 타깃이 되고 있다는 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비스나 이노션의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차의 해외 발주 물량은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 조처가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글로비스의 해외매출 비중은 85%, 이노션의 해외매출 비중은 70%에 달한다. 강철규 우석대 총장(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들의 소유 지배구조가 불공정한 상황에서 이렇게 시혜성 발주의 효과는 일회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현대차그룹의 ‘선제 대응’에 다른 그룹들의 움직임도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누구보다 삼성이 현대차의 공세적인 결정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은 이미 지난해 1월에 약속한 바와 같이 광고, 건설, 물류, 에스아이 등에서 경쟁입찰을 확대하는 등 조처를 취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섭 이정애 기자 sublee@hani.co.kr
글로비스, 현대차 물류 도맡으며 매해 70% 성장
이노션, 총수일가 광고독식…·1년만에 업계2위로 내부거래 줄이는 두 업체는 현대자동차그룹이 계열사간 거래(내부거래)를 축소하겠다며 그 대상으로 지목한 회사는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이다. 두 회사 모두 총수 주도 대기업그룹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경영승계 문제를 둘러싼 시비 때마다 어김없이 입길에 올랐던 기업들이다. 두 업체 모두 정몽구 회장 등 총수일가의 지분 비율이 높은데다, 현대차그룹이란 든든한 우산 밑에서 고속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향후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 마련의 창구 구실로 두 회사는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2005년 5월, 종합광고대행사로 출범한 이노션의 경우, 출범 직후부터 줄곧 정몽구 회장 등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20%, 장녀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장남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각각 40%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 회사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와 범 현대 일가 기업들의 광고를 사실상 독식하다시피 하며, 출범 1년 만에 국내 2위의 광고회사로 급성장했다. 글로비스는 2001년 설립(당시 한국로지텍)된 물류업체로 창사 이래 현대차그룹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주로 운반하며, 해마다 평균 70%가량 매출을 늘려왔다. 정의선 부회장이 지분 31.88%를 가진 최대 주주다.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경영승계 문제와 관련해 특히 주목받는 곳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돼 있어서 이 중 한곳의 지배권만 확보하면 그룹 지배주주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 글로비스는 지분을 매각해 그룹 지배권을 확보하는 ‘돈줄’로 쓰이거나 모비스와 합병해 그룹의 지주회사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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