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제2의 인생을 겁내지 맙시다. 굶어 죽을 일은 없잖아요?”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뒤 외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송훈천(59·사진) 시린국제유한공사 대표이사는 개인 사업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중국에서 차근차근 터전을 일군 몇 안 되는 사업가 가운데 한명이다.

한-중 수교 전인 1992년 현대자동차 베이징사무소 직원으로 파견돼 7년간 근무하다가 외환위기 때 귀국한 그는 고민 끝에 사표를 내고 다시 베이징에 건너갔다. 그리고 사무실에 책상 하나 놓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하는 심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최근, 송 대표는 자신의 중국 체험기 <북경일기>를 펴냈다. ‘어느 한국인 가족의 중국 생활 20년 분투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대기업 주재원으로 중국 관리들을 상대로 사업한 이야기와 밑바닥 체험기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잠시 귀국한 그는 “이 책이 은퇴를 대비해 개인 사업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굳이 ‘분투기’라는 신파조 제목을 붙힌 이유에 대해선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 관리나 사업가들과 회식을 하면 회의 시간엔 안 보이던 인상 좋은 중년 여성이 술잔을 들고 다가옵니다. 친근해 보이지만 엄청난 주량으로 상대를 ‘케이오’ 시키는 술상무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또 중국인들이 번갈아 한국인 테이블에 와 ‘간베이’(건배)를 외치며 술을 권하지만 대부분 그들의 술잔에는 맹물이 채워져 있습니다. 알고서도 내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분위기가 사니까요.”

그는 그동안 무역업, 물류업, 대북 사업, 자동차 대리점, 한국음식점 등 닥치는 대로 도전했다. 물론 많은 ‘수업료’를 날렸다. 북한김치 수입 실패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젓갈 대신 과즙으로 발효시켜 맛이 상큼한 북한김치를 수입하기로 하고, 마침내 평양에서 만들어진 김치를 남포항에서 컨테이너에 싣고 인천항으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김치 컨테이너는 즉시 평양으로 되돌려 보내야 했다. 포장이 터져 국물이 새어 나온 것은 물론 너무 시어져서 상품으로 팔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평양의 김치공장에 냉장시설이 없어 김치가 익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안타까웠어요. 대박 사업이었는데….” 또 옌볜의 송아지를 북한의 개마고원 목장으로 보내 키워, 남한으로 수입하는 ‘기발한 사업’도 추진하던 중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바람에 날려버린 적도 있었다.

현재 베이징에서 무역업과 물류사업, 자동차 대리점과 ‘비원’이라는 한식당 등 식당 3개를 운영하고 있는 송 대표는 “아직은 한국보다 중국이 개인 사업으로 성공할 여지가 많은 땅”이라며 “단, 사업 파트너를 고를 때 중국 고위층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이대며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중국인을 특히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