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손뗀 뒤 기관에 처분 이례적
주가 6% 폭락…일가 지분 26%로
측근 “꽤 오래전부터 고민한 것”
아버지·형과 사업 관련 갈등설
삼형제가 분업해 승계 경쟁했지만
영업익 추락에 채무 갚기도 버거워
재벌가 내부문제에 ‘개미’들 직격탄
주가 6% 폭락…일가 지분 26%로
측근 “꽤 오래전부터 고민한 것”
아버지·형과 사업 관련 갈등설
삼형제가 분업해 승계 경쟁했지만
영업익 추락에 채무 갚기도 버거워
재벌가 내부문제에 ‘개미’들 직격탄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차남 조현문(44) 전 ㈜효성 부사장이 사임하면서, 가지고 있던 회사 주식 252만여주 대부분을 기관투자자 등에 판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재벌가 3세가 승계에 필수적인 자신의 주식을 대량 처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효성 주식은 이날 6% 넘게 폭락했다. 재벌 총수 아들 등 특수관계인이 외부에 주식을 매각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 재벌가 3세의 이례적 주식 처분 ㈜효성은 4일 오후 공시를 통해 “조현문 전 부사장이 주식 240만주를 4일 장 개시 전에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도했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의 측근도 지분 매각 사실을 확인하며 “주식을 판 곳은 효성 일가 쪽이 아니다”고 밝혔다. ㈜효성은 재계 순위 25위(자산기준)인 효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이다.
조 전 부사장이 매우 이례적으로 한꺼번에 지분을 내다파는 ‘물량 폭탄’ 작전을 택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에선 조 전 부사장이 지난해 효성 본사 출입이 뜸해졌다거나 가족과 갈등이 있다는 등의 소문이 돌았다. 효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출장도 많고 바빠서 그런 얘기가 나왔던 것일 뿐 아버지나 형과의 갈등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이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까지 흔들면서까지 시가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판 것을 두고는 해묵은 갈등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조 전 부사장과 가까운 한 지인은 “조 전 부사장이 사업 스타일을 두고 아버지·형과 갈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조 전 부사장이 기관 등에 주식을 처분하게 되면, 조석래 회장 등 효성 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은 33.24%에서 26.06%로 줄게 돼 의도 여부에 상관없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은 약화된다.
총수 일가가 보유한 주식의 자산 가치를 떨어뜨릴 개연성도 높다. 지난달 26일 6만1700원이던 효성 주식은 4일 장중 한때 5만2700원까지 떨어졌다. 그새 주당 9000원이 하락하면서 대주주 일가(주식 1167만주)의 주가 총액 1000억원가량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효성 쪽은 지난달 28일 조 전 사장의 사임을 “가족들이 만류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조 전 부사장의 측근은 “지분 매각은 꽤 오래전부터 고민한 것으로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다. 지분을 다 매각해도 오너 지분율이 20%가 넘어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 전 부사장이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효성 관련 이슈에 계속 이름이 나오지 않겠나. 형이나 동생에게 지분을 넘겨 누굴 밀어준다는 불필요한 논란을 받기 싫어 한꺼번에 팔았다”고 덧붙였다.
■ 재벌 승계 경쟁의 위험요소 투자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이날까지 효성의 주가는 14.31% 떨어졌다. 이 기간에 종합주가지수(코스피)는 0.18% 올랐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량으로 주식을 팔고 나갔다. 효성 주식에 투자한 ‘개미 투자자’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총수 일가가 주식을 대량으로 파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효성의 최근 실적도 좋지 않은데 투자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투자자들을 혼란시키는 총수 일가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은 기업 경영에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외환위기 뒤 우리 기업들의 미래를 위협하는 주요 요소는 경영상의 오류보다 총수 일가의 내부갈등이다. 이런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또 국내 기업의 조직문화 특성상 임직원들은 총수 일가를 향해 줄서기를 하는데, 승계구도에 따라 인적·물적 자원이 업무 성과와는 관계없이 상실될 수 있다. 경영이 그만큼 불안정해진다는 얘기다.
효성은 조 전 부사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기 전, 삼형제가 그룹 부문을 나눠 운영하고 있었다. 조현준 사장이 섬유와 정보통신 쪽을, 조 전 부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은 각각 중공업과 산업자재를 총괄했다. 하지만 삼형제가 분업한 효성의 현재 경영실적은 그리 좋지 않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지난해 실적을 보면, 매출액 12조6120억원, 영업이익 189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1.5%에 불과했다. 효성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5.4%, 2011년 2.5%로 꾸준한 하락세를 이어왔다.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보여주는 이자보상배율도 2010년 3.9배에서 2012년 0.8배로 급락했다. 영업이익으로는 대출금이나 회사채 이자 등 금융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름 밝히길 꺼린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승계 경쟁 과정에 있었던) 효성 삼형제 분업의 단점은 협업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소장은 “총수 일가 내부에 갈등이 있다면, 그룹의 역량이 사업 수행과 상관없는 쪽으로 쏠릴 수 있다. 한국 재벌의 위험요소는 실적의 부침보다는 총수 일가의 갈등과 분쟁”이라고 말했다.
이완 김경락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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