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경제부장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아버지와 당숙은 나란히 외동아들이었다. 사촌 사이였음에도 형제처럼 가깝게 지낸 것은 그 때문이던 듯하다. 설이나 추석이면 아침엔 우리 집에서, 점심엔 당숙네에서 차례를 연이어 지내곤 했다.
농사일에 지쳐서였는지, 야심 찬 다른 꿈을 품었는지, 아니면 또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당숙은 식솔을 이끌고 경북 산골 고향 마을을 떠나 경기도 평택으로 이주한다. 당숙의 처가 식구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해 며칠 전에 육촌 동생한테 물어봤더니 그게 1980년이었다고 했다. 당숙네가 이삿짐을 싣고 떠나던 날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울었다.
농사일로 잔뼈가 굵은 당숙이 도회지에서 번듯한 일자리를 잡기는 어려웠을 터다. 재래시장 야채상점에서 상하차(자동차에 짐을 싣고 내리는) 작업을 했고, 한때는 중고가구 수리점에서 일하기도 했다. 당숙은 손재주가 좋았고 술을 많이 좋아했다. 빈손이나 다름없는 처지로 타지에 흘러들어간 만큼 당숙모 또한 식당 허드렛일 따위의 생업 전선에 같이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당숙네는 그 시절의 많은 이들처럼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가난했다. 좀체 가세가 피지 않는 터에 결정타를 맞은 횡액이 벌어진다. 당숙이 평택 이주 11년 만에 돌연 세상을 뜬 것이다. 당숙의 첫아들이 첫딸을 얻기 며칠 전이었다.
아들 셋 중 둘째와 셋째는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에 잇따라 취업했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터에 학업을 길게 이어갈 수 없자, 일찌감치 생업에 나섰던 것으로 짐작한다. 2009년의 이른바 ‘쌍용자동차 사태’는 이들 형제 노동자도 피할 수 없었다. 기혼이었던 둘째는 자리를 유지했지만, 미혼인 셋째는 ‘무급휴직자’로 회사를 떠나 있어야 했다. 형은 공장 울타리 안, 동생은 울타리 밖으로 갈리는 세월은 금방 끝나지 않았다. 1~2년 안에 이뤄진다던 복직 약속은 올해 3월에야 이행될 예정이며, 그나마 쟁점을 남겨놓고 있다.
지난 10일 쌍용자동차가 3월1일자로 전원 복직시키기로 한 무급휴직자 455명 중에는 당숙의 셋째 아들도 포함돼 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는 온갖 풍상을 견뎌내야 했다. 가을 추수철이면 정미소에서, 겨울엔 건설 노동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이었다. 얼마 전에는 건설 현장에서 자재(H빔)를 운반하던 중 미끄러져 다친 어깨에 핀을 박았다는 사연을 전해 들었다.
셋째가 쌍용차에서 일한 시기는 2002년부터 7년 동안이었다. ‘체어맨’을 만들어내는 자동화 라인에서 시설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복직 뒤 어디에 배치될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일단 한 달가량 교육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만 들었다고 했다.
복직 뉴스가 전해진 며칠 뒤 전화로 연결된 그 셋째의 목소리에선 설렘을 별로 느낄 수 없었다. 희망퇴직자, 정리해고자 등 복직 대상에서 제외된 동료들 문제 외에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도 있기 때문인 듯했다. 그를 비롯한 쌍용차 무급휴직자들은 복직을 앞두고 회사 쪽으로부터 임금 청구소송의 취하를 종용받고 있는 처지다. “(회사 쪽에서) 1월 말까지 확약서를 써달라고 하네요. 455명 중 100명 정도는 이미 써줬다는 소식도 들리고….” 쌍용차 무급휴직자 200여명은 유예된 복직기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진행중이며, 회사 쪽에선 소송을 포기할 경우 1인당 48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복직 뉴스의 기쁨을 누릴 사이도 없이 확약서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 셈이다. 복직 즈음엔 이 겨울 추위도 모두 물러가 있을 텐데, 쌍용차의 봄은 아직 멀어 보인다.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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