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금융실명제 개선’ 인수위에 건의 배경은
현행법, 합의 통한 차명 허용 탓
금융실명제 ‘종이호랑이’ 전락
세무조사 강화만으론 한계 차명규모 수천억~수십조 추정
한쪽선 “선의의 피해자 발생 우려”
대다수 “경제 투명성 향상 효과”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정책과제로 금융실명제 강화를 들고나온 배경은 통상적인 세무조사 강화만으로는 ‘음지에 숨어 있는’ 소득과 거래 내역을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세청은 세수 확보를 위해선 ‘금융정보 활용 확대’와 더불어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 근거 확보’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차명계좌가 지하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구성요소인 만큼 과세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공평과세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선 금융거래의 투명성 확보가 필수라는 얘기다. ■ 차명계좌 허용…재벌 총수 등 탈세의 온상 현행 금융실명제의 가장 큰 허점으로는 합의를 통한 차명계좌 허용이 꼽힌다. 금융실명제가 실명거래를 유도하고 이를 위반하는 거래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와 달리,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실명제 도입 뒤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벌총수 일가는 물론 금융기관 수장까지 차명계좌를 이용해 탈세와 돈세탁에 나서는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04년부터 차명계좌 382개를 이용해 양도소득세 23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역시 1199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4조5000여억원의 재산을 관리하다 2008년 특검에 적발된 바 있다.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은 신한은행장으로 재직했던 1999년부터 재일동포 4명의 이름을 빌린 차명계좌를 운영해왔고, 이 가운데 일부 자금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건네진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고액자산가들도 마찬가지다. 국세청은 2010년 변칙증여 상속재산으로 2075억원을 적발했지만, 이 가운데 1444억원은 증여세 과세 근거가 없어 과세를 하지 못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해당 계좌 명의자가 증여가 아니라 차명계좌라고 주장하면 실제 소유자가 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처리돼 소득세만 추가 납부하면 된다. 실제 증여가 의심되더라도 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 규모파악조차 안 돼…양보다 질적 효과 기대
지난 2011년 국세청은 세무조사 등을 통해 확인한 차명계좌 예·적금 잔액이 6584억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빙산의 일각’일 뿐, 실제 차명계좌 규모는 추정조차 힘들다는 게 국세청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비자금 용도로 은밀하게 감춰둔 차명계좌는 물론이고, 증여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는 차명계좌도 파악하기 힘들다. 현재 드러난 것이 수천억원 규모임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수십~수백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금융실명제법 개선 요구는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라응찬 전 회장의 차명계좌 의혹이 일었던 2010년엔 권혁세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이 “차명계좌를 좀 더 효과적으로 규제하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들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은 차명거래자에 대해 계좌자산의 30%를 과징금으로 물리고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가깝게는 김기준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차명거래시 거래자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럼에도 그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까닭은 가족 간의 거래나 동창회 등 계좌 명의자와 자금 소유자가 합의한 계좌, 신용불량자, 외국인 노동자 등 ‘선의의 차명계좌’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대논리에 거듭 막혀왔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하게 옥죌 경우 또다른 편법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금융실명제의 엄격한 집행을 통해 얼마나 차명계좌가 실명으로 전환되고 세수가 늘어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차명계좌의 근원을 차단하게 되면 한국 경제 전체의 투명성이나 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금융실명제 강화는 ‘양보다 질’의 기대효과가 더 크다는 얘기다.
이재명 최현준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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