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의 경제산책
사랑과 신뢰의 묘약이 있을까. 옛날 마법사들은 그것을 찾아서 숲속을 헤맸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사람들의 뇌 속에서 그것을 찾아낸 듯하다. 상대방을 아끼고 믿으며 포옹하게 만드는 호르몬, 바로 옥시토신이 그것이다. 출산을 촉진한다는 의미의 이 호르몬은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나 사랑으로 껴안을 때, 그리고 섹스의 오르가슴을 느낄 때도 뇌에서 분비된다.
경제학자들도 옥시토신에 주목해 왔다.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며 의사결정의 기초를 분석하는 신경경제학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게임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몸과 뇌가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하며 신뢰와 협조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난제를 풀고자 한다. 신경경제학자 폴 잭 교수는 피를 직접 분석하는 방법 때문에 뱀파이어 경제학자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가 올해 전미경제학회의 개막연설을 맡아서 화제가 됐다.
그는 신뢰게임의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상대로부터 신뢰를 받으면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이 경우 그는 상대를 더욱 믿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다른 실험도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들이마신 사람들이 상대를 더 신뢰한다는 결과를 보고한다. 결국 이 화학물질 옥시토신이 사랑과 신뢰의 기초인 ‘도덕적 분자’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사람들의 협조적이고 이타적인 행위는, 합리적인 계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감정적인 행위임을 보여준다.
물론 옥시토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신경경제학 연구도 한계가 많다. 사람들이 항상 착하지는 않은 이유가 일종의 테스토스테론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은 호르몬 결정론의 위험이 있다. 또한 신경경제학의 단순한 실험으로 인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분석하기는 무리라는 반론도 많이 제기된다. 더 최근의 연구는 옥시토신이 집단 내부의 결속력은 높이지만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불신을 높인다고도 보고한다.
신뢰가 사회적 행위임을 고려한다면, 호르몬을 이야기하기 전에 사람들이 신뢰를 주고받기 어려운 사회구조의 부조리에 관해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잭 교수도 옥시토신을 연구하기 이전에 신뢰가 소위 사회적 자본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신뢰가 높아질수록 시장경제의 발전과 경제성장이 촉진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특히 신뢰를 높이는 요인으로 불평등의 감소, 교육의 확대, 부정부패의 억제와 자유롭고 독립된 언론 등을 지적한다. 언제나 신뢰와 통합을 강조하는 우리의 대통령 당선인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참, 이 신비한 묘약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이미 지금도 부부 금실이 좋아지고 고객의 믿음을 자극하여 매상을 높일 수 있다는 광고와 함께 옥시토신 스프레이가 팔리고 있다. 귀에 솔깃할지도 모르지만, 효과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코로 들이마시는 대신 공기 중에 뿌리는 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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