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렇구나] 모범거래기준
우리 주변에 빵집, 치킨집, 커피전문점, 편의점 등 각종 프랜차이즈 점포가 근래 부쩍 늘어난 것을 얼마나 느끼시나요. 전국적으로 240만개 가맹점을 둔 비씨(BC)카드의 집계를 보면, 편의점의 경우 서울 시내에서 똑같은 간판을 내건 점포들을 평균 240m 거리마다 볼 수 있다고 합니다(<한겨레> 11월15일치 1면). 전체 프랜차이즈 산업의 가맹점 수는 2008년 10만여개에서 2011년 17만여개로 급증했습니다.
점포들이 빽빽이 들어서면서 경쟁은 가열되고 수익은 떨어집니다.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사이에 분쟁도 끊이지 않습니다. 영세 자영업자인 가맹점주는 상대적 강자인 가맹본부로 인한 각종 피해를 호소했고 경제민주화 화두와 맞물려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본부와 점주 사이에 발생하는 각종 불공정 거래 관행을 끊고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규범이 바로 ‘모범거래기준’입니다.
그렇다고 모범거래기준이 프랜차이즈 업계에 국한되어 쓰이는 말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거래에 있어 불공정 요소를 최소화하고 해당 산업의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거래 관행 정립을 유도하고자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다양한 업종에서 마련돼 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1월 제정된 연예매니지먼트 산업의 모범거래기준입니다. 강자인 매니지먼트사와 약자인 신인 연예인 사이 계약에서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모범거래기준은 보통 영어로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라고 번역하는데, 이 말은 규제보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서 경험과 연구를 통해 인정받은 절차’를 뜻합니다. 가맹점 문제에선 본부와 점주 등 거래 주체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최선의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는 가이드라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4월, 7월, 12월에 각각 제빵, 치킨·피자, 커피전문점의 모범거래기준이 발표됐습니다. 주요 내용은 점포의 과포화를 방지하기 위한 신규출점 제한 거리의 설정, 점주 부담을 가중시키는 과도한 매장 리뉴얼 방지, 가맹 계약 정보의 성실한 제공 등입니다. 이에 따라 피자는 1500m, 치킨은 800m, 제빵·커피는 500m 안 신규출점을 제한받게 되었습니다.
현행 모범거래기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지키지 않는다고 벌금 등의 직접적인 제재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관련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이 꼽는 모범거래기준의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참여연대는 “가맹사업법을 개정해 공정위가 정한 가맹사업 업종별 모범거래기준을 법령으로 정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위반하는 경우 불공정 거래행위로 추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국 17만개에 달하는 가맹점들 사이에 벌어지는 위반을 일일이 확인할 인력이 공정위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금도 ‘감히 공정위 기준을 어길 만큼 간 큰 업체는 없다’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기업에 대한 각종 제재 수단을 쥐고 있는 ‘경제 검찰’인 공정위가 제시한 기준을 어겼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고, 경쟁 업체의 고발 등이 두려워 ‘몰래 출점’ 등은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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