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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전문가들 “경제위기? 개혁 안해 위기 온 것”

등록 2012-11-11 20:30수정 2012-11-12 08:36

경제민주화를 흔드는 손
보수·재계 “경제위기” 총공세…전문가들 “개혁 안해 위기 맞아”
비정규직 해소·임금인상 강조…“가계소득이 내수성장 견인케”
“사실 재계는 ‘경제민주화론’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년 초쯤 되면 ‘경제가 이렇게 위기인데 무슨 개혁이냐’는 주장이 빗발칠 테고 그럼 재벌개혁론은 쏙 들어갈 겁니다.”(한 재벌 계열 대기업 임원)

지난달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한국 경제가 사막화되고 있다’는 제목의 자료를 발표해 “반기업 정서의 확산은 설비투자 등에 악영향을 초래함으로써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한 저성장 경제구조의 극복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8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재계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한국 경제가 위기다 → 기업이 투자하지 않으면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 → ‘기업 때리기’를 해서는 안 된다”로 이어지는 똑같은 주장이 되풀이됐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경제민주화 관련 쟁점 검토’란 보고서에서 개혁방안 대부분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재벌 개혁과 복지 강화를 뼈대로 하는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자, 재계와 보수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경제위기론’을 꺼내들며 개혁 흐름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둔화를 빌미로 다시 ‘성장전략(파이 키우기)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애초 ‘경제민주화’에 적극적이었던 박근혜 후보 쪽은 이번달 들어 ‘위기론’에 호응하며 이른바 ‘성장’ 쪽으로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의 한국 경제 위기는 ‘개혁을 미뤄왔기 때문에’ 심화한 것이며, 이제는 더 늦기 전에 기존의 ‘성장을 위한 성장’ ‘소수를 위한 성장’이 아닌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는 “재벌, 대기업 산하 경제연구소, (보수) 경제학자, 경제관료가 합세해 개혁을 피하려는 ‘연막’을 치고 있는데, 수없이 되풀이돼온 방식이다. 지금의 위기는 개혁을 안 했기 때문에 생긴 위기이고, 개혁을 해야 끝나는 위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단기 수익만 추구하고 주주와 경영진만 떼돈을 버는 주주자본주의, ‘머니게임’으로 전체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금융자본주의는 우리나라와 전세계에 공통된 위기요인이고, 일부 재벌은 높은 수익을 올리는데 중소기업은 약하고 2·3차 하청업체는 더 약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가장 비참한 ‘역피라미드 경제’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위기요인”이라며 “이런 요인 때문에 선진국도 불황이니 수출이 안되고, 국내 가계는 돈이 없어 내수도 부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 성장률은 2010년 6.2% 반짝 성장을 보인 뒤 지난해 3.6%로 내려앉았고 올해는 2%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학균 케이디비(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우리 경제가 오일쇼크, 외환위기, 카드사태, 금융위기 같은 큰 쇼크가 없었는데도 2%대 성장률을 보인 것은 처음 있는 현상”이라며 “정부의 수출중심 정책으로 내수는 허약해져 있는 상태인데, 미국·유럽·중국의 동반침체로 수출마저 부진해지면서 한동안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복합 장기불황을 이명박 정부가 시행했던 기업규제 완화, 기업세금 깎아주기, 고환율 유지 등 기존의 ‘대기업·수출 밀어주기’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처럼 선진국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다시 수출을 늘리려면 환율을 끌어올리는 등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래도 성공할 확률이 크지 않다”며 “더 큰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가계가 더욱 가난해져 내수가 가계부채 폭발 등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재계가 주장하는 위기극복 방식이 20년째 계속돼온 결과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지나치게 심해지고 노동자·서민의 삶은 악화하는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며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 안정, 비정규직 축소, 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을 통해 가계소득을 끌어올림으로써 중산층·서민의 삶이 불황기에 더욱 피폐해지는 것을 막고 내수 성장률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이 고용으로 이어지는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할 필요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바로 중소기업, 노동자, 서민을 살리는 새로운 성장모델”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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