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MB 친재벌, 역설적으로 ‘경제민주화’ 되살려

등록 2012-10-03 20:28수정 2012-10-03 21:49

권익현(민정당·앞줄 왼쪽)과 이중재(민주당·앞줄 오른쪽) 협상대표를 비롯한 민정·민주당의 8인정치회담 대표들이 1987년 9월2일 국회에서 두 당이 합의한 개헌시안에 서명하고 있다. 88 보도사진연감
권익현(민정당·앞줄 왼쪽)과 이중재(민주당·앞줄 오른쪽) 협상대표를 비롯한 민정·민주당의 8인정치회담 대표들이 1987년 9월2일 국회에서 두 당이 합의한 개헌시안에 서명하고 있다. 88 보도사진연감
[경제민주화와 나] 굴곡과 시련의 25년
진통끝 1987년 헌법개정
119조 2항에 정신 담아…
정권 바뀔 때마다
일관성 잃고 오락가락
시행착오 되풀이…
내년 경제 어려워
또 발목잡을 가능성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규정한 헌법 119조2항이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복지와 함께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재벌그룹 임직원들도 사석에선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의 큰 흐름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했다. 정부 주도의 산업화전략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성장을 가져왔으나, 경제의 대외의존과 빈부격차의 심화, 거대 경제세력인 재벌의 독주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정부의 인위적 자원배분이라는 시혜와 국민의 희생에 힘입어 급성장한 재벌은 양보와 절제의 미덕 대신 끝없이 탐욕을 부렸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박 대통령 시절인 1975년부터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회상한다. 김 위원장은 1987년 헌법 수정 작업 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국회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1987년 헌법 119조2항의 탄생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재계 대표격인 전경련은 개헌저지를 위해 홍보대책위원회(위원장 김우중 대우 회장)를 만들고, 홍보대책비로 2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지금 기준으로 400억~500억원은 되는 거액이었다. 재계의 로비는 청와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개헌안에서) 헌법 119조2항은 빼면 안됩니까?” 1987년 ‘6·29 선언’으로 개헌작업이 본격화한 뒤 전두환 대통령은 경제관련 개헌안을 보고하는 김종인 국회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의 얼굴을 쳐다봤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버텼다. “사회가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재벌을 제어하는 법을 만들려고 해도 재계가 위헌이라고 막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이 조항이 필요합니다.” 전 대통령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대공황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헌법적 근거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실례다. 1932년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특별의회를 소집해 수많은 사회경제개혁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상당수는 자유방임주의에 물든 미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았다. 일 예로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최저임금과 최대노동시간(주당 60시간 이내)을 규정해서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을 안정시키려는 ‘전국산업부흥법’이 노동자와 사업자의 자유침해라는 엉뚱한 이유로 제동이 걸렸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경제민주화의 기원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초대수상 비스마르크는 체제안정을 위해 1870년대 질병과 산재 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잇달아 도입했다. 그는 부르조아지(자본가)의 반대에 대해 “(노동자들이 결성한) 사회주의 정당들이 점점 더 의회에 많이 진출하고 있다”면서 “당신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1930년대 미국의 뉴딜정책은 경제 재건을 위해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 대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케인즈주의를 채택해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한국 국민들은 독재권력과의 오랜 투쟁 끝에 1987년 정치적 민주화를 성취했다. 하지만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119조2항)을 만든지 25년이 지나도록, 과거 압축성장과정에서 생긴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등 사회경제적 모순은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정책으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이 꼽힌다. 재벌을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해 상호출자제한, 출자총액제한, 재벌 소속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 행위규제, 계열사간 부당지원 금지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왔다. 하지만 그 상당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관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며 제 성과를 못내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했다.

재벌의 성장 과실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흘러넘치는 낙수효과가 약해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친재벌정책을 내세운 이명박 정권의 역주행은 역설적으로 경제민주화가 개헌 25년 만에 시대정신으로 부활하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민주당의 홍종학 의원은 “재벌들은 헌법 119조2항을 부정하는 근거로 헌법 119조1항(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을 내세우지만, 현실에서는 약자의 자유와 창의가 철저히 무시되면서 1항조차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개헌 25년을 맞은 지금 경제민주화 바람은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김종인 위원장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바로 레임덕(권력누수)이 와서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반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대통령 임기 5년 내에 완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면서 “내년 국내외 경제상황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경제민주화의 발목을 잡는 구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신중론을 폈다. 경제민주화를 늦추면 도리어 위기만 깊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역사적으로 경제력 집중과 친기업 규제완화 등 반민주적 경제는 경제위기의 근원이 된다”면서 “경제민주화는 위기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구조개혁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견고한 안’-‘추격자 문’…단일화 시험추 ‘호남쟁탈전’ 뜨겁다
구미 가스누출 피해, 소방관·경찰 등으로 확산
“하우스푸어는 올안 집 파는 게 나아”
가계빚 심각한데…은행들 사상최대 ‘배당잔치’
“민주열사 묘역 초라해 눈물 나”
우리나라 국민 500여만명 ‘암 유발수준’ 전자파 노출
[화보] 프로야구 700만 달성 '꿈이 아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금융시장의 ‘최후 보루’ 중앙은행…내란 이후 한은 총재의 결정 1.

금융시장의 ‘최후 보루’ 중앙은행…내란 이후 한은 총재의 결정

이어지는 백종원 빽햄 구설…주가도 ‘빽’ 2.

이어지는 백종원 빽햄 구설…주가도 ‘빽’

위기의 롯데그룹…내수·외국인 관광객에 명운 달렸다 3.

위기의 롯데그룹…내수·외국인 관광객에 명운 달렸다

저축은행·인터넷은행도 2%대 금리…주식으로 ‘머니무브’ 움직임 4.

저축은행·인터넷은행도 2%대 금리…주식으로 ‘머니무브’ 움직임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의무 방안 백지화 5.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의무 방안 백지화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